“글쎄, 어디 두고 볼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화면. 발목을 다쳤다는 여자(물론 처음보는 여자다)가 남편에게 다가와 도와달라고 청한다. 남편이 이 여자의 아파트앞까지 업어다주자 이번에는 집안에 들어가자고 끈질지게 불륜을 유혹한다. 간신히 물리치고 귀가하는 순간 울려퍼지는 소리. “네! ‘악마의 속삭임’을 이겨내셨습니다.”
몰래카메라를 동원한 TV오락프로의 한 토막이다.
브라운관을 누비는 몰래카메라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동네약국 약사와 짜고 약을 사러온 남자손님들에게 설문조사를 한다며 별의별 질문을 퍼붓는다. “최근에 부인과 언제 키스하셨어요?”“일주일쯤 됐나?”(방송국 차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내가 소리지른다. “어제도 했잖아!”)“부인의 신체 중 어디가 제일 좋으세요?” “가슴이 정말 커요.”
‘시청자 참여’라는 명분으로 TV에 활용되는 몰래카메라가 갈수록 방자해지고 있다. 처음엔 연예인들을 놀리는데 쓰이더니 단란한 가정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푸짐한 상품을 미끼로 남의 안방까지 마구 침입한다. 한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24시간 중계하는 케이블TV를 등장시켜 세계인을 놀라게 했던 영화 ‘트루먼쇼’가 남의 일이 아니다 싶다.
물론 사후 동의를 거쳐 방영되고 있겠지만 나 모르게 내 사생활이 남의 웃음을 위해 공개된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무서운 일이다. 더욱이 가공할 TV의 위력앞에 가장 가까운 가족까지 나를 속일 수 있다니, TV가 인권 침해를 넘어 인간성 파괴에 앞장서는 셈이다.
다행히 국무회의가 17일 몰래카메라의 처벌근거를 마련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의결했다고 한다.
TV몰래카메라의 악영향은 성폭력의 그것을 넘어선다. TV에 등장하는 몰래카메라도 함께 처벌됐으면 좋겠다.
김순덕<문화부>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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