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대학엘 가게 되었다. 집을 나서서 처음 유치원엘 갈 때만 해도 버스에 오르는 뒷모습이 뒤뚱거리던 그 작은 것이, 어려서 사과를 좋아해서 늘 한쪽 볼이 불룩하게 사과를 베어물고 다니곤 하던 아이가, 자라서 대학생이 된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의 흐뭇하고 대견스러움은 다른 부모와 다를 것이 없었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집안의 좀 더 넓은 방으로 아이의 방을 바꿔주기로 하였다. 지난 해의 수험서로 뒤덮여 있던 아이의 서가가 휑하니 빈 것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어떤 다른 책을 꽂아줄 것인지를 이것저것 생각하는 마음은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내 서재에서 아이의 책꽂이로 옮겨주고 싶은 책들에는 셰익스피어전집도 있었고, 희랍비극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趙芝薰(조지훈)전집 10권을 꽂아주는 것으로 입학선물을 대신하기로 했다.
▼成人이 되었으니 꼭…▼
선생의 인품과 기개, 그리고 그 도도한 글들을 나 또한 늘 존경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양의 인문사회과학 책으로 현실인식을 시작하는 요즘 대학생들의 독서풍토를 생각할 때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그토록 눈부셨던 지훈선생의 글을 감수성 강한 나이에 꼭 읽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로서 성인이 된 아이와 함께 요즈음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부끄러운 때라는, 나의 요즈음 세상을 보는 우울함도 거기 얹힐 수밖에 없었다.
췌언임을 알면서도 덧붙이자면, 조지훈전집 서문에 쓰여 있듯이, 선생은 素月(소월)과 永郎(영랑)에서 비롯하여 서정주와 유치환을 거쳐 청록파에 이르는 한국현대시의 주류를 완성함으로써 전반기와 후반기를 연결해 준 큰 시인이다.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지훈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느 누구도 훼손하지 못할 만큼 확고부동하다.
어디 그뿐인가. 梅泉(매천) 黃玹(황현)과 萬海(만해) 韓龍雲(한용운)을 이어 지훈선생은 지조를 목숨처럼 중히 여기는 지사(志士)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한국현대사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한국현대정신사의 지형을 이해해야 하며, 바로 그 한국현대정신사의 지도를 이해하려는데 조지훈 전집은 크게 기여하리라는 편집위원들의 전집 서문에 나 또한 동감이었다. 지훈을 따르려는 사람에게도, 지훈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사람에게도 지훈의 전모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이 전집은 필요하다는 생각도 거기 있었다.
▼난세에 되새기는 지조▼
책을 꽂아주던 날 저녁 나는 딸아이에게 이 책에 얽힌 뒷이야기 하나를 더 들려주었다.
『이 책에는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법학도였던 한 젊은이가 흠모하던 스승이 계셨다. 지훈 조동탁 선생이 그분이었다. 그 젊은이는 훗날 출판인이 되어, 문학과 언론관계 책을 주로 내는 출판사를 키워냈다. 아들을 낳자 이름을 지훈이라고 지었으니, 스승에 대한 흠모와 그 마음 끌림의 깊이는 너도 짐작이 가리라. 그리고 그는 자신의 출판사가 처음으로 번듯한 사옥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 사옥 이름을 지훈빌딩으로 붙였다. 어디 그뿐이었겠니. 사옥을 마련한 후의 첫 일로 그는 학계의 여러분들로 조지훈전집 편집위원을 구성하고, 전 10권의 방대한 조지훈 전집을 펴내기에 이르렀다. 아들의 이름도, 회사 빌딩도 지훈으로 지은 이 회사가 조지훈 전집을 펴낸 것이다』
난세라는 느낌마저 드는 요즘의 이 국가적 위기에, 우리에게도 존경해 마지않는 스승이 있었음을, 지훈선생의 글과 함께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요즈음이다. 지훈선생의 「지조론」과 「한국민족운동사」와 「한국문화사서설」을 비롯한 지훈문학과 사상의 바다에서 젊은 날의 마음밭을 가는 일을 시작하면 어떻겠는가, 말해 주고 싶다.
한수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