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갈수록 치사하고 저질로 흐른다. 개혁을 주창하는 집권당 답지가 않다. 용(龍)들의 전쟁이 아니라 미꾸라지들의 개펄싸움만도 못하다. 당대표는 마지못해 후보등록전 대표직사퇴 의사를 어정쩡하게 비쳤지만 반대진영의 반발로 격돌 일보직전이다. 이런 이전투구(泥田鬪狗) 끝에 후보가 되어본들 얼마나 국민들의 박수와 지지를 받을 것이며 또 설혹 대통령이 된들 국가경영을 제대로 할 수있을지 의문이다.
▼ 치졸한 패거리 싸움 ▼
하기야 후보자리는 하나인데 일곱명이나 나섰으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사람이다」하고 딱부러지게 출중한 인물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문제다. 거기에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일단 집권여당의 후보만 되면 대통령은 떼어논 당상(堂上)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염치불고하고 사생결단(死生決斷)을 하는지도 모른다.
신한국당 사람들은 뼈를 깎는 아픔으로 새정치를 실천해 보이겠다고 다짐한지가 엊그제인데 벌써 한보나 김현철비리사건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있다. 기왕에 출사표를 던진 이상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물론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는 골목싸움이 아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게임의 규칙이 있다. 그것을 무시하려들면 이겨도 패배자가 된다. 떳떳하게 싸워 얻은 승리여야 값지다.
아무리 당내 경선이라지만 국민의 눈을 의식해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이런 치졸하고 역겨운 패거리싸움이 아니다. 국가경영의 철학과 비전을 놓고 정책대결을 벌여야 제대로 된 경선이다. 노선과 정책에 따라 동조자를 규합하고 다툰다면 아무리 치열한들 누가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그런데도 정책은 뒷전이고 오로지 연(緣)을 좇아 이합집산하는 세(勢)몰이만 전면에 나서 어지럽게 치고받는다. 새정치는커녕 헌정치의 확대재생산이다.
공정경쟁의 참뜻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나라와 국민과 당을 위해 남보다 얼마나 더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부각시켜 증명해 보이고 그런 다음 대의원들의 자유선택에 맡기되 결과에 승복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경선의 요체다. 자신을 잘 보여 선택받기 보다 상대방을 헐뜯고 흠집내고 끌어내려 이기겠다는 생각들이 앞서있다면 신한국당은 미래가 없다. 당대표자리가 뭐기에 살생부 창자론 하며 나도는 용어마저 섬뜩하고 살벌하기 짝이 없다. 이건 전투지 경쟁이 아니다.
이런 마당에 정책따위가 끼여들 틈이 있겠는가. 권력분산론까지도 지금은 쑥 들어가 버리고 남은 것은 서로 물고 뜯기다. 정책에 승부를 걸겠다고 호언하던 한 예비주자는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는 지인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일찌감치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 정책 경륜으로 경쟁을 ▼
페어 플레이 부재(不在)는 우리 정치의 오랜 고질병이다. 수없이 선거법을 뜯어고쳤어도 선거때만 되면 상대를 짓밟고 올라서야 자기가 산다는 의식에는 변함이 없다. 말로는 여야가 동반자 관계라면서도 실제는 타도하거나 제압해야 할 대상쯤으로 서로를 인식하고 있다. 이런 부정적인 정치행태가 이번 신한국당 경선에서도 극(極)에 이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너죽고 나살기로 치고받다 보면 자기가 먼저 죽을 수도 있고 한꺼번에 같이 죽을 수도 있다.신한국당 주자들은 이제부터라도 정책과 경륜과 인격을 걸고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험한 꼴을 보이면 정치의 선진화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경선의 의미가 없어진다. 우선 집권당의 당내 경선부터 이모양으로 난잡하면 올12월의 대선 또한 너죽고 나살자식 진흙탕 싸움이 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남중구(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