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칼럼]통곡의 섬

  • 입력 1997년 8월 8일 19시 46분


서태평양의 아름다운 산호섬 괌이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섬이 돼버렸다. 하루 아침에 통곡과 회한의 섬이 될 줄은 몰랐다. 칠흑같이 어두운 폭우의 밤, 굉음과 함께 니미츠 힐에서 치솟은 추락 KAL기의 불길은 순식간에 탑승객 2백54명의 생과 사를 갈라놓았다. 사고 잦은 나라의 부끄러운 기록이 또하나 추가된 것이다. 그리고 약 한시간 뒤, 충격적인 사고소식은 급전을 타고 전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미국대통령과 교황 일본총리를 비롯, 각국 지도자들이 다투어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해온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나라가 좋은 일보다는 궂은 일로 또한번 동정과 위로의 대상이 된 것이 가슴 아프다. 괌자치정부는 생존자 구조작업과 사망자 수색작업이 완료될 때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선포하고 반기를 게양했다. ▼ 부실성장의 한 단면 ▼ TV화면에 비친 사고현장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생지옥 그대로다. 종이비행기처럼 산산이 찢기고 열에 녹아내린 기체의 처참한 잔해 위로는 다음날에도 계속 비가 내렸다. 생존자는 더 이상 없다는 수색대의 확인에도 유족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 엄청난 슬픔과 분노를 어찌할 것인가. 희생자들의 명복과 생존자들의 조속한 쾌유를 비는 것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철저한 원인규명은 필수적이다. 항공기사고는 불가항력인 측면이 많지만 63%는 인재(人災)라는 통계가 있다. 기체결함 기상이변 관제미숙 조종실수 그 어느 것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의 복합적 작용인지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대형기종이 부적절한 노선에 휴가철 성수기를 맞아 에어버스 대신 보잉747을 투입한 경위는 무엇이며, 미국 일본 국적기들이 낮시간에 뜨고 내리는 공항을 우리는 밤에 이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한다. 육해공의 대형사고도 이젠 끝난 줄 알았을 때 터져나온 이번 참사는 우리 사회 부실성장의 단면을 또한번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겉모양은 그럴듯하지만 한꺼풀 속을 들여다보면 정치도 경제도 모래처럼 흩어져 있고 부석거리는 거품투성이다. 양적으로 이만큼 팽창했으면 이젠 질적으로 내실을 기할 때가 되었다. 우리 민간항공도 그동안 양적 성장은 눈부셨다. 대한항공은 화물운송면에서 세계2위, 승객수송에서도 10위권에 들지만 질적으로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한 채 항공여행 기피회사로 치부되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항공산업에서 질은 안전과 서비스 특히 위기관리가 생명이지만 영리앞에서는 그것도 뒷전이다. 무심하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사고조사 전문요원은 건설교통부 항공기술과의 4명뿐이라고 한다. 선진국처럼 우리도 독립적인 항공안전관리 전담기구 설치가 시급하다. 지난 89년 무리한 착륙시도중 73명의 목숨을 앗은 대한항공기 트리폴리 참사의 기장도 그렇지만 이번 사고기의 기장도 「웰던」상을 받은 베테랑이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무리한 운항스케줄과 그에 따른 무리한 비행에도 큰 원인이 있다.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누적되는 과로를 이겨낼 재간이 없다. 조종사들은 회사가 자신들을 트럭운전사 취급한다고 자조하지만 그렇다고 조직적으로 반발할 입장도 못된다. ▼ 자기성찰의 계기돼야 ▼ 「조국의 날개」라는 대한항공이 그동안 국민을 놀라게 한 일은 한두번이 아니다. 또한번 끔찍한 대형참사를 겪으면서 구조적 문제점이 무엇인지 뼈를 깎는 자기성찰과 경영책임의 소재(所在)를 밝혀 마땅하다. 사고가 날 때마다 사죄광고를 큼직하게 내는 것으로 모든 게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기관의 경영진단도 받아 안전불감증부터 다스리는 일이 급선무다. 또다른 통곡의 섬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남중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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