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부를 문화부로 명칭을 바꾼 것은 잘한 일이다. ‘문화’를 돋보이게 하고 그 영역을 넓혀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부의 첫 장관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할까. 우선 그동안 문화부 또는 문화체육부 장관을 지낸 사람들에 대한 주변의 평가를 들어보자.
90년 1월 문화부가 생기면서 처음 장관이 된 사람은 이어령 이화여대교수(90년1월∼91년12월). 그는 문화정책의 틀을 잡은 장관으로 기록되고 있다. 문화를 이벤트화했다는 일부 비판도 있지만 명쾌한 논리와 특유의 시각으로 문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지금도 일반인에게 문화부장관으로 기억되는 사람은 아마 이장관뿐이 아닐까.
그 다음은 6공말의 이수정씨(91년12월∼93년2월). 언론인출신으로 청와대에서 오래 봉사한 데 대한 배려 차원의 인사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정권말기 장관들에게 공통되는 현상이지만 무난했다는 평이다.
김영삼(金泳三·YS)정권이 들어서며 문화부는 문화체육부로 바뀌었다. 그 첫 장관은 이민섭씨(93년2월∼94년12월). 추진력, 업무조정능력이 뛰어났으나 전문성 부족으로 ‘작품’은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
뒤이은 사람은 주돈식씨(94년12월∼95년12월). 남다른 필력으로 성가(聲價)가 높았던 언론인이었지만 그 역시 ‘문화체육’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음은 김영수씨(95년12월∼97년3월). 조직을 장악하고 뚝심있게 일을 추진, 예산확보 등에 남달랐다는 평이다. 그러나 가시적 업적은 남기지 못했다고들 한다.
YS정권말에 발탁된 사람은 현재의 송태호장관. 현직에 있는 만큼 평가는 이르다.
이들 6명의 장관 평균수명은 16개월. 다른 부처보다는 평균 재임기간이 길었지만 문화부 또는 문체부장관으로서어떤업적을남기기에는너무짧았다.
또 이어령교수를 제외하고는 언론인 또는 법조인으로 출발해 정치나 관리의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관리능력을 발휘했지만 창조적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같은 전례를 교훈삼아 새 정부의 첫 문화부장관을 고를 때는 몇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첫째, 장관이 책임져야 할 큰 잘못이 없으면 정권이 끝날 때까지 같이 갈 사람을 선택했으면 한다. 문화부장관을 ‘정국 전환용’의 개각에 포함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는 정치가 아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문화부장관을 희생시키는 것은 후진국 정치의 잘못된 단면이다.
둘째, 조직을 장악해 군림하는 장관이 아니라 문화인과 함께 가는 장관이었으면 좋겠다. 문화부장관이 관료적이어서는 관료적인 문화정책밖에 나올 것이 없다.
셋째, 이 나라의 지성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외국의 문화장관 중 명장관으로 회자되는 사람은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다. 그는 58년 ‘강력한 문화국가’를 표방한 드골대통령에 의해 제5공화국의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임명돼 10년간 재직하며 ‘행동하는 지성’으로 프랑스문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드골은 “나의 오른편에는 언제나 말로가 있었다”고 칭송했다. 반(反)나치 레지스탕스로 정치적 동지이자 열렬한 ‘드골주의자’였던 말로를 치켜세우며 드골주의에 스스로 흡족해하는 말처럼 들린다.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의 오른편에 열렬한 ‘김대중주의자’는 없어도 된다. 그러나 말로와 같은 문화주의자, 휴머니스트가 그의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한진수(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