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민병욱/연습이 허용안되는 國政

  • 입력 1998년 2월 17일 21시 48분


국정엔 연습이 없다. 국정이 한번 삐끗하면 나라가 흔들리고 국민은 휘청거린다. 실제 독선 독단 독주의 국정운영이 나라 모습을 어떻게 일그러뜨렸는지를 보면 국정에 연습이 없다는 말은 백번 옳은 말이다.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은 반어법적으로 얘기하자면 행운아다. 대통령당선자라고 해서 누구나 하는 게 아닌 국정연습을 지난 두 달 동안 해왔다. 국가파산 직전 상황에서 도리없이 국정 전면에 나섰지 그게 어찌 연습이냐고 하겠지만 연습이자 실전준비인 건 틀림없다. 헌법상 지금도 국정의 총책임자는 엄연히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실전보다 더 무겁고 힘든 연습을 거쳐 며칠 후면 김차기대통령은 진짜 책임을 지러 청와대에 들어가게 된다. ‘대통령 실습생’으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일단 ‘합격’이다. 선거에서 얻은 지지보다 훨씬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야당 일부에서조차 “김대중씨가 당선한 것이 다행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무튼 그가 나서면서 국가부도 사태는 피했고 흐트러진 국정도 그나마 틀을 잡아가고 있다. 이 점 역시 그에겐 행운이다. 그러나 이런 행운이 새 정부에서도 계속될까. 연습게임은 잘 치렀지만 본게임도 그렇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벼랑 끝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섰다고는 하나 경제는 여전히 혼미상태다. 그동안은 국제통화기금(IMF) 역병(疫病)이 두려워 김차기대통령이 내놓은 개혁 프로그램의 약발이 먹혀 들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고 지속되리란 보장이 없다. 재벌은 벌써부터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드러낸다. 실직자가 쏟아져 나오면 노동계 분위기가 어떻게 돌변할지도 알 수 없다. 쓰러지고 먹히는 기업들이 내지를 비명이 우리 사회에 불러올 파장 또한 가늠하기 어렵다. 중산층이 엷어지고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면 지금의 지지가 단번에 반대로 돌아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치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엊그제 임시국회에서 보았듯 거대야당의 전폭적인 협조란 있을 수 없다. 한치라도 틈을 보이면 파고들어와 휘저으려 할 것이다. 당장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인준을 받는 것이 난제 중 난제로 대두했다. 논리의 무장이 허술하면 가파른 여소야대의 격랑을 피해 나가기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여권 내부의 모습도 안심할 만한 것이 못된다. 사상 처음 해보는 공동정부가 과연 제대로 굴러갈지 불안하다. 선거 전에 자민련과 합의한 약속 중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려다가는 오늘의 동지가 내일은 등을 돌려 앉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도처에 지뢰밭이요, 날선 칼 위에서 곡예하듯 국정을 이끌게 된 것이다. 여건이 이러니 김차기대통령을 지금 행운아라고 부르기는 머쓱하다. 다만 현재의 엄청난 상황을 슬기롭게 돌파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잘 한 대통령’으로 기록된다면 그때 가서 “역경이 오히려 행운이었다”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은 분명하다. 김차기대통령은 대선 전엔 ‘준비된 대통령’을 강조했고 당선 후엔 ‘남달리 실전 연습도 했으니’ 본게임도 정말 잘해줄 것이라고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이에 부응하려면 연습게임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빨리 고쳐야 한다. 많은 이들은 그가 연습과정에서 혼자 너무 앞서 뛴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김영삼정부 초기의 독주를 닮았다는 얘기도 한다. 일주일후 시작할 본게임엔 연습이 없다. 국민 모두 함께 손잡고 뛰는 게임이어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민병욱<부국장대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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