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이인길/경제는 「市場」에 맡겨라

  • 입력 1998년 3월 5일 19시 57분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빅딜’이 유행이라고 한다. 교환은 교환인데 대상이 기업은 아니고 학용품이란다. 일제 연필 한개에 국산연필 세자루, 미국산 액세서리에 일제 헤어핀 두개 식인데 맞바꾸는 과정이 재미있다.

둘이서 “빅딜할래”하면 소지품 중에서 각자 원하는 물건을 고른 다음 등가(等價)면 1대1의 물물교환이고 그렇지 못하면 1개 대 2,3개로 성립된다고 한다.

어른들도 자기것과 남의 것을 빅딜 한다면 이와 뭐가 다르겠는가. 그러고 보니 최근 두어달 동안 그토록 요란했던 빅딜이란 말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도대체 어디로 갔나.

크게 봐서 재벌을 개혁하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의 새로운 지평을 위해서도 재벌개혁은 반드시 짚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빅딜만 해도 그렇다. 새정부가 대선 이후 재벌개혁의 상징처럼 내세웠지만 뭔가 첫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 아닌지 의문스럽다.

빅딜이 뭔가. 이를 테면 삼성의 자동차와 현대의 전자사업을 맞바꾸겠다는 발상인데 집중화로 세계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논리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우선 현행 법규상 수십가지 규제가 얽혀 기업자산의 분할, 차액자산의 정산, 매각정리가 원천적으로 어렵다. 설령 초법적으로 빅딜을 한다고 해도 경쟁력이 향상된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오히려 이질적 기업문화와 종업원의 고용불안으로 시너지 효과는커녕 독과점과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더 높다.

새정부의 핵심철학인 ‘기업의 자율경영’과도 앞뒤가 맞지 않다. 김대중정부가 모든 부문에 ‘자율’을 강조하는 배경엔 효율성을 짓뭉개는 정부개입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목격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무리한 조치에 왜 그리 집착하고, 그것도 초단시간에 성과를 내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앞뒤가 맞지 않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재벌그룹의 회장실과 기조실을 없애는 문제도 그렇다. 계열사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라는 현실적 필요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없앤다면 생각대로 쉽게 사라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형체는 없어질지 몰라도 계열사 어느 구석에 분명히 그 기능을 대체하는 편법적인 조직이 새롭게 생겨날 것이다. 실제 기업의 이야기가 그렇다.

재벌총수의 개인재산 출연요구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재벌에 대한 미움과 응징의 충동이 커지는 것은 우리사회의 ‘정서상’ 어쩔 수 없는 대목이다. 강제 없이 흔쾌히 이뤄졌다면 더없이 바람직할 터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데 있다. 여론과 집권자의 생각에 따라 사회적 기초가 훼손되는 것은 중대한 사태가 아닐수 없다. 불법상속 불법증식 해외유출에 해당하는 총수가 있다면 엄중히 처벌하면 된다. 출연이 면죄부로 해석되는 분위기여서는 안된다.

정치인은 정치 논리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취재현장에서 ‘내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윗사람이 시켜서’라고 말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을 수없이 보았다.

따지고 보면 오늘 우리의 위기도 ‘시장경제의 원리’가 철저히 무시되고 이런 유의 인기영합적 시책이 판을 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새정부의 입각자 면면을 보면 과거 ‘관치(官治)시절’의 인물이 적지 않은데 이제는 제발 시장경제를 통제하겠다는 유혹을 억제하기 바란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오만도 버리기 바란다.

이인길<정보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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