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김충식/「特命」 사라져야 한다

  • 입력 1998년 3월 15일 21시 42분


특명이라는 말은 어쩐지 엄하고 ‘비장한’느낌을 준다. 거스를 수 없는 명령,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시, 성사시키지 않으면 변고가 생기고 말 것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소설이나 무용담에 나오는 특명도 모두 그렇다.

사전에는 특별명령의 준말이라고 되어 있다. 보통의 강도로 명하는 게 아니라 특별히 센 명령인 셈이다. 그래서 특명은 늘 저항을 이기고 관철하라는 의미를 띤다. 범상한 방법과 수단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특명’이라야 수행할 수 있다는 분위기인 것이다. 제도와 절차를 정상적으로 밟아서는 시간이 걸리고 저항 때문에 안된다는 전제가 거기 배어있다.

이를테면 박정희 시대에 중앙정보부의 6국은 ‘특명’수사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통령 박정희의 이른바 하명(下命)사건을 다루는 조직으로 산천초목을 떨게 했다. 고 김성곤(金成坤)의원의 수염을 뽑았다는 70년대 4·8항명사건을 처리한 악명높은 팀이다. 국회의원 20여명을 정보부로 잡아가 마구 매질하고도 뒤탈이 없었으니 그 위력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통치권자의 완력부대가 정상적인 절차로 국회의원을 불러 조사하려 했다면 될 턱이 없다. 헌법기관에 원내 발언의 면책특권도 가진 의원 신분을 법절차에 맞춘다면 한 사람이라도 오라가라 할 수 있겠는가. 국회의 무기명 비밀투표라는 표결행위가 대통령의 비위를 거슬리게 했다 해서 그 표결을 한 의원들을 물리적으로 닦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특명’이라는 이름이 붙었기에 초법적인 완력을 휘둘렀다. 그런 전통은 5공에도 이어져 걸핏하면 ‘통치권 차원’이요 특명이라는 말이 들먹여졌다. 83년 한일합섬 김근조이사를 고문하다 숨지게 한 조직도 특명을 받드는 치안본부 특수수사대였다.

통치권자의 ‘특명사건을 수사한다’는 구실로 독립건물을 가명으로 사용하면서 위력을 과시했다. ‘옥인동’ ‘신길동’같은 이름의 가옥에서 외부접근을 막아놓고 비밀수사 강압수사를 관행으로 삼았다. 그래서 어떤 신비한 위력 집단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6공 때는 대통령 딸의 승마연습 보도를 둘러싸고 관련자를 캔답시고 승마 관계자를 연행 조사해 물의를 빚었다.

그러한 ‘특명조직’이 문민정부에도 고스란히 승계되었다. 경찰청 조사과로 이름이 바뀌어 불법공작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야당 대통령후보와 그의 친인척 은행 계좌를 뒷조사하고 결과적으로 그 자료는 대통령 선거에 이용되었다. 물론 이번 불법공작은 검찰 조사에서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봉합되었다. 사정비서관과 그의 지휘를 받은 경찰청 조사과팀과 은행감독원 직원들의 불법이 밝혀졌지만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특명이라는 말이 힘을 얻으면 정상적인 제도와 조직 운용이 뒷걸음질치게 된다. 권력자의 의지나 기분이 공무(公務)를 앞지른다. 그리고 특명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법과 질서를 가로지르며 무리와 편법, 더러는 불법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특명의 그늘에 숨어 권력을 남용하고 위세를 보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메커니즘이 결국 특명반을 무소불위로 만들고 고문도 하고 결과적으로 살인사건도 빚는 것이다. 특명이라는 단맛에 취해, 위아래가 권력중독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현대법률을 익힌 현대 국가의 공복(公僕)들조차 ‘용의 눈물’ 같은 사극(史劇)에나 나오는 권력쟁투의 앞잡이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경찰청 조사과의 기능을 재검토하는 새 정부는 이점을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김충식 (사회부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