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김충식/「趙高」와 「푸셰」의 망령

  • 입력 1998년 3월 26일 20시 33분


권력 변동기, 힘과 기회를 좇아 허둥대다 성공하는 이도 있지만 무너지는 사람도 숱하게 많다. 또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듯했지만 끝내는 비참한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자도 적지 않다. 그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가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른바 정권교체기의 ‘북풍공작’에 나섰던 ‘정보꾼’들의 볼썽사나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삼스레 역사속 인물 두사람을 떠올린다. 한사람은 지금으로부터 2천2백여년전 진시황시대의 조고(趙高). 또 한사람은 1800년대 프랑스의 비밀경찰 총수였던 조셉 푸셰. 두사람은 ‘독대(獨對)’와 ‘정보’,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술수가 얼마나 권력 추구의 유력한 발판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인물들이다.

조고는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난 환관(宦官)이었다. 재주많고 영리한 그는 진시황의 눈에 들어 황제가 임종할때 환관 책임자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는 황제와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채널이었다. 그래서 여행중에 진시황이 가마 안에서 죽자 바깥세상을 움직여 정권을 창출할 수 있었다.

시황제의 뒤를 이을 수 있는 큰아들 부소(扶蘇)는 변방에 유배된 상태였다. 분서갱유(焚書坑儒)에 반대하다 미움을 산 터였다. 그러나 시황제는 죽기전 부소를 후계자로 삼는다는 유언장(遺詔)을 남겨 부소에게 보내도록 했다. 유언장을 손에 쥐게된 조고는 분서갱유의 주도자 이사(李斯)와 짜고 내용을 조작했다. 부소가 황위를 이으면 이사와 조고는 살아남기 어려웠기 때문에 서로 손을 잡았다.

가짜 유언장 내용은 부소가 자결하라는 내용이었다. 부소는 아버지 시황제를 원망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고는 그런 공작을 펼치는 동안 시황제의 시신이 심하게 썩어 냄새가 진동하자 꾀를 냈다. 상한 생선에 소금을 뿌려 시황제의 가마에 실은채 궁성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 조고의 정권창출을 위한 모든 명령은 단지 ‘앓고 있는’ 시황제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조고는 시황제의 열여덟번째 아들 호해(胡亥)를 후계자로 한다는 가짜 유언장을 만들었다. 조고가 어려서부터 가르쳤던 황제의 유약한 아들이었다. 그렇게 호해 황제를 앞세워 국정을 농단하던 조고는 이사마저 죽인다. 그리고민심이반으로 반란이 잇따르자 마침내 허수아비 황제 호해도 죽이고 호해의 아들 자영이 황위를 잇게했다. 그러나 나중에 자영까지 처형하려는 음모를 꾸미다 결국 피살당하고 만다.

1800년대 격동의 프랑스 혁명기와 나폴레옹 사이에서 기막힌 기회주의로 살아간 조셉 푸셰(1759∼1820). 인터넷에도 ‘정치사찰의 아버지’ ‘변신의 명수’라고 적혀있는 인물이다.

그는 루이16세 처형에 앞장서고 로베스피에르의 편에 서서 각종 반란을 잔혹하게 다스려 ‘피의 도살자’라는 악명을 얻었다. 그러다 로베스피에르와 등지게 되고 마침내 그를 처형하는 대열에 선다. 그리고 나폴레옹 집권기에는 경찰청장과 내무장관으로 독재의 버팀목을 해냈다. 나폴레옹이 밀려나고 푸셰가 처형하자고 했던 루이16세의 형제인 루이18세가 1814년 집권할때도 푸셰만은 건재를 과시했다.

기원전 사람 조고나 2백년전 푸셰는 역사에 파묻혀 흔적도 없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은 인지가 발달하고 과학이 지배하는 오늘에도 여전하다. ‘독대’를 통해 힘을 쓰고 상대를 해치며 국가권력을 농단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정보’수집과 공작의 위력을 빌려 격동기의 파도를 타고 권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군상들의 몸부림이 지금도 드러나고 있다.

김충식<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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