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0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 이 말은 듣기에 정말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왜 노동자만 당해야 되느냐. 재벌개혁 정치개혁이 미흡하지 않느냐”는 볼멘 항의에 김대통령은 개혁의 강력한 추진을 다짐하며 “나는 간단치 않다”고 말했다.
이 표현은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간단치 않다는 말은 흔히 다루기 쉽지 않다는 뜻으로 쓰지만 때에 따라 상대에게 어영부영 넘어가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 말싸움을 할 때 ‘나는 간단한 사람이 아냐’라고 하면 ‘한번 해볼테냐’는 도발적 언사가 된다. 김대통령은 “(기업개혁은)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아무 것도 안하고 절대 못넘어간다”고 전제한 뒤 자신이 간단치 않다고 강조했다. 제시한 개혁방향에 따르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경고 이상의 의미를 담았다고 봐야 한다. 이제 겨우 취임 70일을 넘긴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자청하고 그 자리에서 다소 위협적으로 들리는 말을 서슴없이 할 만큼 상황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재벌개혁이든 정치개혁이든 개혁돼야 할 세력의 반발로 주춤해진 인상이고 여론은 ‘새 정부 들어 아무 것도 된 게 없다’는 쪽으로 급격히 돌아서고 있다. 개혁 주체만이라도 앞장서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텐데 그렇다고 수긍하는 국민도 거의 없다. 자신은 변하지 않고 남에게만 변화를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엄존한다.
그 단적인 예가 ‘공동정부’에 대한 대통령의 설명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자리 나눠먹기 의혹이 제기되자 김대통령은 “우리는 선거때 자리를 나누겠다고 공약했다. 국민과의 약속대로 하는 것이다”고 해명했다. 매우 놀라운 발상이다. 공동정부 공약이 양당의 자리 나누기(철저한 반분·半分)를 미리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부터 비약이다. 게다가 그 자리 나누기의 부작용이 간단없이 드러나는데도, 국민을 불쾌하게 하는데도 “이것은 약속이다”며 별 문제가 아닌 양 물리친 것은 일종의 독선이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임한 것은 그간의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는 것, 당리당략이나 사심없이 나라를 이끌어 달라는 것, 그래서 국민을 편하게 살게 해달라는 것이 주(主)다. 국민에게 비치는 모습은 생각하지 않고 정치인끼리, 정당끼리의 협약만 준수하라고 국민이 표를 준 것은 아니다. TV대화 질문자는 어쩌면 재산문제로 물러난 보건복지부 장관 파동을 상정해 나누기 인사의 문제점을 제기했을 것이다. 임명부터 잘못됐고 또 하자가 드러났는데도 대통령이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 ‘공동정부의 한계’를 지적했을 것이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개선책을 제시했어야 옳았다. 그래야 남의 잘못도 ‘개혁하라’고 주문할 명분을 얻는 것이었다.
정치개혁 또는 정계개편도 그렇다. ‘발목잡는 야당’만 비난할 게 아니라 여당의 의원 빼가기가 과거 정치의 잘못을 답습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음을 시인할 필요가 있었다. 대신 큰 정치를 위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정치권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은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남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김대통령이 TV대화에서 경제실상을 솔직히 알리고 고통분담을 호소한 모습은 좋았다. 부단히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다짐도 수긍할 만했다. 다만 자신의 흠에도 솔직해야 한다는 명제를 던졌다.
민병욱<부국장대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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