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엄중한 규정을 둔 이유는 자명하다.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들, 특히 고위 공직자들이 법기강을 무너뜨릴 경우 선거풍토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의 준법의식에 결정적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치가 독재와 비정(秕政)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과거 수십년 동안 우리 선거풍토와 준법의식을 오염시킨 주범이 이른바 관권선거, 다시말해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총동원된 공무원들의 선거개입이었다.
고장난 레코드처럼 진부한 얘기를 굳이 다시 꺼내는 것은 7·21 재 보선을 앞둔 요즘 김종필총리서리의 언행을 둘러싸고 여야간에 벌어지고 있는 논란 때문이다.
시비거리가 된 대목은 김총리서리가 자민련 명예총재실을 방문해 재 보선에 출마하는 자당 후보들을 격려한 일, 며칠전 재 보선이 실시되는 대구 부산을 방문해 지역경제활성화 방안과 선거실시지역 그린벨트 해제 문제 등에 관해 언급한 일, 총리집무실에서 이번 강릉을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최각규씨를 만난 일 등이다.
특히 자택도 아닌 집무실에서 최씨를 만난 데 대해서는 총리실 직원들조차 어이없어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같은 언행을 둘러싸고 명백한 불법선거개입이라는 게 야당측 공격논리이고, 선거와는 무관한 통상적 국정수행이요 정치활동이라는 게 김총리서리측 반박논리다.
그리고 1차적 유권해석기관이라 할 수 있는 중앙선관위측 견해는 ‘지금까지의 김총리서리 활동 중 명확하게 선거운동으로 규정지을 만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여야간 공방논리, 즉 김총리서리 언행의 불법여부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법당국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위야 어찌됐든 헌정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집권세력 스스로 언필칭 ‘국민의 정부’를 되뇌고 있는 ‘새 시대’에 이런 유의 케케묵은 얘기가 쟁점으로 대두된다는 자체가 한심스럽기 이를데 없는 일이다.
시비거리가 되고 있는 김총리서리의 언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다. 법망에 걸려드느냐, 아니냐가 전부일 수는 없다. 명색이 ‘국민의 정부’의 총리서리 정도 되면 법에 앞서 사회적 통념이나 정치적 여파같은 것들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옳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번 재 보선을 앞두고 김총리서리가 드러내고 있는 언행들은 누가 봐도 “선거판이 벌어졌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게 사회적 통념이다. 이를 도외시한 채 ‘새 시대’니, ‘국민의 정부’니 하는 말만 되뇐다면 그야말로 국민을 김총리서리가 가장 싫어하는 ‘핫바지’로 아는 기만이다.
이도성<뉴스플러스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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