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의미있는 선택의 기회를 유권자들에게 제공해야만 진정한 자유선거의 요건을 갖추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처럼 단일후보만 출마하는 선거는 자유선거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복수의 후보가 나섰더라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이 정당이나 저 정당이 모두 똑같다는 의식이 팽배한 선거라면 이 또한 자유선거로 보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7개 지역 국회의원을 새로 뽑는 ‘7·21 재보선일’에 새삼스레 자유선거의 정의를 되새겨보는 이유는 자명하다. 지금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의미있는 선택의 순간을 맞고 있는가. 결원이 된 7명을 새로 뽑아 의원정수 2백99명을 다 채워주면 의정 모습이 뭔가 새롭게 달라질 것이란 기대를 걸 만한가.
국회밖 정쟁으로 날을 지새면서 의정활동은 외면하는 여야 정당들이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갑자기 심기일전해 나라살림을 챙길 것이라고 볼 만한 근거라도 있는가. 그도 아니면 어느 후보를 선택할 경우 지역살림이 한결 나아질 것이란 확신을 심어주고 있는가.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여야 정당들은 이번 선거의 의미를 과대포장해 ‘개혁에 힘을 실어달라’느니 ‘여당의 독주(獨走)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하는 행동들은 딴판이다. 개혁에 필요한 법안들이 원구성도 안된 국회에서 낮잠을 자는지 벌써 몇달째다. 실업자가 무더기로 쏟아지고 동해안엔 무장간첩이 침투했지만 국민의 생존이 걸린 이들 문제가 국회에서 공식으로 토의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지역경제가 거덜나는데도 국회의원들은 중앙정치무대의 보스 뒤를 따라다니거나 골프장에서 소일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각 정당은 이번 선거에 대표급 중진들이 대거 나섰으므로 ‘트위들덤과 트위들디의 대결’처럼 고만고만한 선거가 아니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당리당략에나 골몰하고 경축해야 할 50주년 제헌절 기념식에 검은 리본을 달고 참석하는 따위의 일로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정당들―거기서 나온 그렇고 그런 후보들이 대결하는 이번 선거는 분명히 도토리 키재기 선거일 수밖에 없다. 정당정치의 위기인 것이다.
이런 선거이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기권율이 높을 것이란 예측도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분명히 짚어둬야할 점은 기권은, 참정권의 포기는 지금의 정치위기를 더욱 깊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국민의 정치관심이 낮으면 낮을수록 정당들은 국민은 쳐다보지 않고 제멋대로 정치판을 이끌게 마련이다. 끝없이 정치를 감시하며 잘못하는 정당, 정치인은 퇴출시킨다는 국민의 의지를 보여야만 정당정치의 위기는 해소된다.
‘투표없는 민주주의는 없다’는 명제는 자유선거의 어떤 요건보다도 중요하다.
민병욱(부국장대우 정치부장)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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