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이인길/박세리와 이찬진

  • 입력 1998년 7월 22일 19시 16분


박세리와 이찬진. 두 사람 다 분야가 독특하고 가는 길이 전혀 다를 것 같지만 조금 주목해보면 몇가지 점에서 유사성과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선 두 사람은 무명의 신인으로 혜성같이 나타나 단시일에 대스타가 됐다. 쟁쟁한 스타가 즐비한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요행이 아닌 당당한 실력으로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성공 신화를 20대 초반에 이룩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찬진이 누구인가. 컴퓨터가 생소했던 80년대 ‘아래아한글’이란 창안품 하나로 일약 신세대의 우상이 된 한국의 성공한 벤처기업가 1호다. 서울대 학생 시절 그가 개발한 워드프로세스는 한글의 문자 특성을 정확하게 살린 최초의 소프트웨어란 평가를 받으며 순식간에 시장을 석권했다.

수많은 경쟁업체가 이찬진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그 벽을 끝내 뚫지 못했다. 박세리만 기록을 세운 게 아니다. 한때는 이찬진씨도 수없이 많은 비즈니스 기록을 만들어내며 승승장구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렇다면 박세리와 이찬진 드라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가장 현격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두 사람의 활동무대다. 이찬진이 한국을 벗어나지 않은 ‘국내용’이었다면 박세리는 세계의 모든 골프장이 그의 활동무대였다.

그가 세계무대에 데뷔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준비된’ 몇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의 개인 역량이 아무리 출중했다 해도 국내 트로피에 만족했다면 ‘SERI PAK’의 신화가 있었을까.

이 점에서 보면 박세리는 삼성이란 든든한 후원자의 도박적인 투자와 과학적인 훈련을 통해 실력의 세계화에 성공한 첫 사례가 되는 셈이다.

이찬진에 대한 아쉬움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컴이란 기업을 창업한 이후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몰락한 그의 실패 원인은 여러가지다. 불법복제같은 외부적 요인도 물론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보면 국내시장에서 초반의 성공과 유명세에 안주한 나머지 정확한 시장예측과 새로운 제품개발에 소홀한 이찬진 자신에게 패착의 원인이 있다는 편이 더 옳다.

어차피 국내시장은 컴퓨터 보급추세로 볼 때 한계가 있었다.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이 팔릴 수 있는 시장이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은 해외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와 같다.

이찬진의 몰락은 결국 한국경제의 실패한 세계화와 금방 끓다가 식어버리는 냄비체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박세리의 주변 상황도 결코 순탄하지 않다. 가장 큰 변수는 정부당국이다. 경제도 엉망이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정부로선 박세리를 당장 불러들여 훈장도 주고 요란한 이벤트를 벌이고 싶은 유혹을 느낄 법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간절할수록 좀 참아주기 바란다. 골프는 멘탈게임이고 리듬과 템포가 생명이다. 수많은 환영대회와 방송출연, 매스컴의 인터뷰 공세, 각종 초청시합과 행사에 참석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 쯤이면 박세리는 몸과 마음이 모두 녹초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번 상승무드가 꺾이면 롱런에 치명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또 한가지. 박세리는 계약을 둘러싼 잡음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 겨우 3승을 올린 마당에 벌써부터 돈과 관련해 온갖 불미스런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누가 봐도 모양이 좋지 않다. 물론 스타 대우를 요구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쳐 키워준 신의까지 팽개친다면 그것은 골퍼가 갖춰야 할 ‘매너’를 스스로 짓밟는 것과 다름없다.

이인길<정보산업부장>kung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