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민병욱/「裂」에서 「合」으로 가는 길

  • 입력 1998년 8월 12일 19시 37분


내일 모레면 건국 50년이다. 쉰살을 맞는 대한민국, 그 역정(歷程)을 상징하는 한자어 하나를 찾아보라면 어떤 것을 고를 수 있을까.

기자는 그것을 ‘裂’(렬)이라고 본다. ‘찢다’‘찢어지다’의 뜻을 지닌 한자어다. 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의 단독 정부수립은 바로 남북의 갈라짐을 의미했다. 이태 뒤 6·25를 거치며 반세기가 흐르도록 찢어진 남과 북은 다시 하나가 되지 못했다. 남쪽에선 동과 서가 찢겼다. 서서히,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그것은 아프디 아픈 우리의 현실이 돼버렸다.

남북문제와 동서문제는 쉰살 대한민국의 가장 극명한 단면이다. 그러나 그뿐인가. 다른 분열의 현상은 없는가. 안타깝지만 수없이 많다. 그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정치는 파당과 분쟁의 질곡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했다.

남과 북, 동과 서의 찢어짐이 모두 정치에서 비롯됐지만 어느 정치인도 아직 그 열상(裂傷)을 치유하지 못했다. 경제는 기적같은 성장을 자랑하다가 IMF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의 추억이 지금 우리의 가슴을 찢고 있다. 사회의 갈등구조도 심화됐다. 계층간 세대간 골이 깊어졌고 가족도 찢어지고 있다.

건국 50년을 경축하는 마당에 왜 이렇게 비관만 늘어놓느냐는 견해가 있을 것이다. 옳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에의 반성이 없는 한 밝은 미래의 희망은 없다. 모레 대통령이 밝힌다는 ‘제2의 건국’도 그런 전제가 없다면 공허한 말잔치로 끝날 뿐이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각오는 분명 우리가 지금 주저앉고 말았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서야 가능하다. 그리고 오늘, 정부수립 50주년일을 이틀 앞둔 지금, 찢기고 만신창이가 되어 주저앉아 있는 것들의 한 가운데에 정치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50년 역정의 찢겨 상처난 부분을 깁고 고쳐나가는 것이 정치의 주제가 돼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바로 그런 정치의 무대이다. 그러나 그 무대 중 한 곳은 지금도 여전히 찢어진 모습만 보여준다. 대통령이 구상하고 시도하려는 제2의 건국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찢겨 거덜난 국회부터 살리지 않고서야 가능할 수 없다.

말은 백번 옳지만 상대(야당)가 있는데, 그 상대가 사사건건 걸고 넘어지는데 어떻게 국회를 살리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소수 여당으로서는 역부족이라고 책임을 미루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상의 방법을 써야 한다. 대통령이 총재로 있는 여당이 다 양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도대체 총리인준을 먼저 하든 부의장과 상임위원장을 먼저 뽑든 그것이 무슨 문제인지 국민은 알지 못한다. 병든 국회가 건국 50주년을 맞는 8월15일에도 일어서지 못한 채 허우적댈 것인지 국민은 찢어지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김대중(金大中)정부는 취임 6개월이 다 되도록 국회 한번 제대로 열지 못했다. 어떤 이유가 있었거나 국정의 책임자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모든 것을 양보해서라도 국회를 살리는 것부터 제2의 건국을 하기 바란다. 그것이 ‘열(裂)’에서 ‘합(合·통합, 힘을 모음)’으로 가는 첫번째 길이다.

민병욱<부국장대우 정치부장>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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