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자민련의 김의원은 지난해 6월 1심에서 1천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가 8일 2심에서 80만원(의원직 상실 형량은 1백만원 이상)을 선고받았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국민회의 입당설이 나도는 홍문종의원도 지난해 9월 1심에서 2백만원형을 선고받았다가 4일 2심에서 80만원형으로 내려갔다. 아직 대법원 확정판결 등 남은 절차가 있긴 하나 두사람 모두 일단 의원직 상실 위기는 벗어난 셈이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야당인 한나라당의 홍준표의원은 올 1월의 1심과 2일의 2심에서 똑같이 5백만원형을 선고받았다. 의원직을 잃을 것이 확실해지자 홍의원은 “정부의 의도대로 의원직을 박탈당하지 않겠다”며 의원직 사퇴의사를 밝혀놓은 상태다.
물론 96년 4·11 총선 이후 지금까지 진행된 14명의 의원에 대한 선거법위반 단죄 상황을 ‘여생(與生) 야사(野死)’라는 식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여당이나 그 언저리의 의원들중 금배지를 떼게 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중에도 1심에서 의원직을 잃게되는 형량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살아남은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얘기를 끄집어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정치상황과 사법상황이 완전히 절연(絶緣)되기 힘든, 그래서 적지않은 국민이 ‘정치따로, 사법따로’식으로 보아주지 않는 우리 현실 때문이다. 특히 정치권의 최대 화두인 사정(司正)과 정계개편을 둘러싸고 온갖 구설과 시비가 제기되는 요즘이어서 더욱 그렇다.
김대중대통령과 여권이 거의 정치적 명운을 걸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두가지 화두의 궁극적 지향점은 한마디로 ‘개혁’이다. 그러나 개혁이 무엇인가. 너도나도 별의별 복잡한 논리, 이상적 개념, 현란한 수사(修辭)를 동원하며 개혁을 외치지만 그 기본이자 바탕은 ‘제대로 된 법치’다. 새로운 법제와 기강세우기도 좋으나 있는 법이나마 제대로 운용하고 난 연후에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일이다.
‘제대로 된 법치’의 요체는 엄정함에 앞선 형평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다. 제 아무리 엄정한 법집행도 형평성에 대한 신뢰에 의구심이 제기된다면 법치의 바탕은 부실한 모래흙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땅위에 개혁이라는 누각을 지을 수 없음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남긴 불멸의 교훈이다.
아직 때는 늦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원내 안정의석을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마치 ‘너죽고 나살기’식의 전투를 벌이듯 휘몰아칠 일이 아니다. 야당측의 비난은 정략적 반발로 치부하더라도 저변의 민의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읽어내는 여권의 밝은 눈이 아쉽다는 얘기다.
일벌백계의 단호한 ‘칼맛’을 보여주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법치에 대한 국민적 신뢰감의 극대화다.
길게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이러한 신뢰감 확보에 실패한 사정과 정계개편이 결국 어떤 말로를 걷게 되는지를 바로 직전의 김영삼정권이 너무나 극명하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이도성<뉴스플러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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