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지금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사정(司正)보다 경제회생이 우선이다”고 한다면 경제를 위해 사정은 길을 비켜주라는 얘기가 된다. 겉으로는 경제를 회생시킨 뒤 사정을 해도 늦지 않다는 말처럼 들리나 실상은 사정을 아예 그만두라는 얘기다. 왜냐하면 ‘사정보다 경제 우선’을 말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사정이 경제의 걸림돌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의 주장을 백분 인정한다 해도 어느 정도라야 경제회생이 된 것인지 선을 긋기도 불분명하다. 예를들어 “이제 경제회생은 됐다”고 모두가 수긍하더라도 사정회피론자들은 또다시 비교론적 우선순위를 내세워 사정의 순연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요점은 쓰러진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중요하고 부정부패의 척결도 옳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선순위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두가지의 병행추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왜 무엇이 되면 무엇은 안되고, 무엇을 하려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모 아니면 도’식의 양분(兩分)논리에 빠져야 하는가. 이는 결국 사정이 지닌 폭발성, 적당히 서로 봐주면서 이득을 챙기던 관습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우리가 지금 짚어야 할 점은 사정과 경제회생 중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까가 아니다. 두 과제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혹시 어느 한 쪽에 치우쳐 다른 쪽이 엉뚱한 피해를 보지 않는지 철저히 감시하며 두 과제의 동시달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경제도 정치도 결국은 추락하고야 말도록 한 정경유착 등 잘못된 관행을 끊는 사정, 그래서 경제회생의 전기(轉機)를 마련하는 사정이 되도록 채근해야만 한다. 우선순위의 함정에 빠져 과거의 부정부패는 눈감아주자고 한다면 경제회생은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그런 의미에서 정부와 사정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사정이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어느 정파를 길들이고 보복한다거나 정부의 집권기반을 강화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지녀서는 안된다. 왜 이번 사정은 야당과 특정지역 인사, 집권자와 불편한 관계였던 사람들에게만 집중되느냐는 의혹을 받으면 그것은 사정이 아니다. 분명한 범죄사실도 아닌 혐의만으로 특정인의 이름을 흘리고 거기에 청와대와 여당이 개입했느니 아니니하는 말이 많은 것도 온당치 않다. 그런 말이 나오니 각각 다른 방향에서 추진하고 달성해야 할 경제 살리기와 부정부패 근절이 우선순위의 꺼풀을 쓰고 사정 중단론으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경제를 망친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사정이 경제를 살리자는 우선순위론에 밀리는 책임의 상당부분은 정부와 사정당국에도 있다.
민병욱<부국장대우 정치부장>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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