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아도 나날이 고단해지는 세파에 이런 일들까지 겹쳐 올 추석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연휴 때 귀향활동을 벌였던 여야 의원들도 지역정서나 생활여건 등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큰 흐름은 ‘세상 걱정’과 ‘정치 불신’이었다고 현지 민심을 전한다.
아무튼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인 총풍사건 자체를 놓고 뭐라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이 사건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저울질이 아니라 오로지 ‘사실관계’를 토대로 결말이 나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은 이 사건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이 보이고 있는 ‘부적절한’ 행태들이다.
총풍사건의 직접 당사자는 이미 구속수사중인 이른바 비선조직원 3명과 수사당국이다. 물론 사안의 성격이나 정황상 정치권과 이들을 칼로 무 베듯 갈라놓을 수는 없으나 현 단계에서 이 사건을 붙들고 정국을 마비시키고 민생의 본산인 정기국회를 볼모로 잡는 행태는 말 그대로 구태중 구태다.
물론 국회마비의 1차적 책임은 여측의 등원촉구에 대해 ‘못들어가겠다’며 버티는 한나라당이 질 일이다. 세풍이든 총풍이든 지금 사건의 핵심은 이회창총재의 관련여부 쪽으로 이미 옮겨갔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관한 한 이총재 스스로가 ‘실체적 진실’, 그 자체다.
이총재의 주장대로 사실무근이요, 고문조작에 의한 정치적 음해라면 더욱더 국회를 열어 조목조목 따져봐야 할 일이 아닌가. 그렇게 직접 당사자인 정부당국자들을 불러 누명을 벗고 사태를 반전시킬 일이지 민생을 볼모로 잡고 성명전이나 벌일 일인가.
해묵은 양비론은 내키지 않지만 국회마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건 여측도 마찬가지다. 다른 것들은 차치하고 엊그제부터 국민회의에서 “이회창총재를 정치적 파트너로 상대할 수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정말 듣기 민망한 정도를 넘어서는 얘기다. 국회 정상화 의지가 있다면 어떻게 저런 얘기로 정국을 더 벼랑 끝으로 몰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지우기 힘들다.
이총재의 책임은 1차적으로 사법당국에 의해 가려질 일이다. 그렇게 해서 사법적 책임이 제기된다면 2차적으로 이총재 스스로나, 한나라당이 정치적 거취를 결정할 문제다.
어찌됐든 대의원 경선에 의해 선출된 야당총재에 대해 예단(豫斷)의 수준에서 자격론을 거론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도 별로 들어보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섬뜩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세풍도 그렇지만 총풍은 더욱 사안의 성격이 예사롭지 않다. 정쟁이나 홍보전의 소재로 삼기에는 너무나 사안이 심각하다. 그래서 민심의 대세도 ‘걱정과 불신’이라는 것을 정치권은 알아야 한다.
지금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민생을 볼모로 잡고 장외 정쟁으로 날을 지샐 게 아니라 국회부터 열어야 한다. 총풍만이 국정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조속하고도 명확한 진상규명과 엄정한 책임추궁은 일단 사법당국에 맡길 일이다.
이도성<뉴스플러스 부장>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