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은 이런 말을 했다. “거의 전쟁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위험한 것이 정치다. 전쟁에서는 한 번 죽임을 당하지만 정치에서는 수없이 당한다.” 정치에서 죽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고 지금 졌다고 해서 영원히 지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전쟁에서야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정치의 무대에서는 죽고 살고 이기고 지는 것이 반복된다. 언제나 이긴다면 그처럼 좋고 신나는 일이 없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지더라도 종국에 가서 이기는 길을 찾는 게 정치라는 속뜻이 그의 말엔 숨어 있다.
그렇다. 정치의 세계에는 완승(完勝)이 없다. 100% 승리가 목표는 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꿈이다. 51%의 승리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며 반대파의 숫자나 비율을 최대한 줄이는 게 중요하다. 과정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갈등을 안고 가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는 어떤가. 완승주의, 상대를 철저히 짓밟아 움직일 수 없도록 죽여 놓아야만 내가 산다는 논리가 지배한다. 양보는 밀리는 것으로 생각하며 ‘밀리면 죽는다’는 말을 구호처럼 외친다. 지면서 이기는 방법을 얘기하는 사람은 비겁하게 적당주의에 빠진 타협론자로 매도되고 오로지 싸울 뿐이라는 강경파들이 ‘선명’의 탈을 쓰고 무대를 헤집는다.
영수회담의 예를 들어보자. 양비론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야당은 제쳐두고 여당의 잘못된 행태만 짚어보자. 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만남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여당은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불법모금에 대한 이총재의 시인 사과를 요구하는 모양인데 그건 잘못됐다. 분명히 아직 수사중인 사건이며 시비도 가려지지 않았다. 이총재의 측근 의원이 잘못을 시인했다는 주장도 하나 본인 얘기는 다르다. 당연히 이총재의 사과가 회담의 전제조건이 될 수 없으며 설령 야당의 잘못을 확인했더라도 영수회담에서 정중히 문제를 제기해도 되는 것이다.
사실 영수회담을 졸라야 할 쪽은 여당이다. 한나라당은 의원 빼가기로 세가 다소 약화되긴 했으나 엄연한 원내 제1당이다.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가 제시하는 정책들이 국회를 거치려면 이 거대야당의 협조 없이는 안된다. 내가 내놓는 정책만이 최고라는 독선이 없다면야 당연히 야당을 설득하고 조언을 구해야 한다. 영수회담이 아니라 의원 개개인이라도 대통령이 만나 설득해야 할 판인데 그러지는 않고 야당총재가 파트너로 적합하니 아니니 오만한 말만 하고 있으니 정치가 제대로 굴러갈 턱이 없다.
여당은 영수회담 후의 모양도 생각한다고 한다. 아무 합의 없이 헤어지면 모양이 안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대통령이 반대파의 의견을 경청하고 정부의 입장도 설명하는 진지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는 것 만큼 좋은 모양이 어디 있는가. 어떻게든 이기고 보겠다는 생각만 앞서 있으니 대화가 꽉 막히는 것이다.
누구보다 대통령부터 생각이 바뀌었으면 한다.지는듯보이지만 이기는 정치를 하기 바란다.
민병욱<부국장대우 정치부장>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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