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임기로만 계산한다면 5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산법(算法)으로 그 의미의 크기와 무게를 헤아리기 힘들다. ‘시작이 반’이라는 금언은 어느 경우보다 이 경우에 어김없이 들어맞는 말이다.
이 기간중 국정운영의 기틀이 이미 상당부분 잡혔고 따라서 다가올 내일도 어쩔 수 없이 그 토대에서 조망(眺望)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집권세력 스스로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거창한 자축행사(수평적 정권교체 및 공동정권 1주년 기념식)를 갖는 취지도 아마 그런 것이었으리라고 믿고 싶다.
물론 현 정권의 지난 1년의 치적과 공과를 지금 당장 평가하고, 결론을 내리고, 내일을 예단(豫斷)할 뜻은 없다. 쉬운 일이 아닐 뿐 아니라 그럴 사안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난해 꼭 이맘 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대선후보로서, 또 당선자로서 제시했던 국정운영의 청사진마저 “그건 그때 얘기”라고 돌려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 청사진들은 여전히 지난 1년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요, 오늘의 상황을 비춰보아야 할 거울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경제대통령’ ‘외교대통령’이 되겠다”던 김대통령의 공약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경제개혁과 서민권익보호, 민주적 시장경제 발전, IMF와 적극협력, 사회기강확립과 부패척결, 남북한 직접대화 추진, 국제친선과 교류협력 강화 등의 청사진도 그런대로 진전을 보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집권세력이 자신해마지 않았고 또 기대도 그만큼 컸던 ‘정치’ 쪽이다. 집권 당사자들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고 또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나 현 정권의 지난 1년 정치는 오히려 ‘실패’ 에 가깝다. 김대통령 개인에 대해서도 ‘정치9단’이라는 평가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소리가 적지 않게 나온다.
그냥 주관적 인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여전히 심화되는 지역간 갈등구조, 국회 돌아가는 모양새, 퇴행적 승부게임에 몰두하는 정치권, 확산되는 안보난맥상과 국민적 불안감, 민초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개혁불신 등 바로 오늘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체감하는 현실이 이를 웅변으로 입증해준다.
이 모든 병리의 근인(根因)은 무엇보다 집권세력의 안이한 현실인식이다. 대선승리 1주년 행사만해도 그렇다. 누구든 자축할 일이 있으면 자축하는 건 자유다. 또 정권교체를 이룩한 감격과 집권의 뿌듯함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정치의 본령이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큰 박수를 받기는 힘든 행사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굳이 ‘그날’의 감격을 되새기고 내일의 희망을 기약하기 위한 이벤트를 마련하려 했다면 김대통령이 당선 직후 누누이 다짐한 “국민전체가 대동단결할 수 있는 역사적 전환점” “지역간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국민화해와 통합을 위한 밑거름”을 체감할 수 있는 ‘실천적 장전(章典)’을 밝히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도성<뉴스플러스부장>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