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가 매주 한차례씩 경제장관간담회를 갖기로 하면서 ‘민주적 토론과정 중시’를 강조한 것은 3월말이었다. 이 간담회는 9월까지만 해도 매달 서너번은 열렸다. 그런데 10월에는 16일에 딱 한번 있었고 11월은 건너뛰더니 10주만인 오늘(24일) 모처럼 열릴 모양이다.
“한미투자협정 문제만 하더라도 부처간에 이견이 많아 경제장관간담회 같은 데 올려 조율할 필요가 있지만 그런 움직임은 없다. 협정이 체결되면 직접투자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고 대통령이 말했기 때문에 공개적으론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다.”(재정경제부 관리)
어느 경제부처 간부는 이런 말도 했다. “지금 경제정책이 토론을 거쳐 걸러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정부) 초기에는 그래도 토론이 활발했다. 그러나 가을로 접어들면서 청와대 주도가 뚜렷해졌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경제대책조정회의 안건도 일일이 청와대의 체크를 받아야 한다. 어전(御前)회의 전에 검열을 받는 셈이다.”
일부 경제관료는 성장잠재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내년에도 인위적 경기부양보다 구조조정을 확실히 마무리하는데 역점을 둬야 한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하지만 경기부양 최우선으로 몰고가는 청와대 분위기가 워낙 강해 말도 못꺼낸다”며 2000년 봄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논리를 걱정한다.
“말도 못꺼낸다”는 소리는 더 있다. 산업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 빅딜은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지만 청와대 입장이 워낙 단호해 …”라고 기자들에게만 말을 꺼냈다.
말은 꺼냈지만 “깔아뭉개졌다”는 관변의 소리도 있다. “대우 삼성간 사업교환을 포함한 빅딜의 문제점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인위적 빅딜은 실익이 없으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절차를 밟는 것이 훨씬 좋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
경제부처 간부의 말을 하나만 더 듣자. “요즘 경제정책은 청와대에서 다 만들고 관련부처는 뒤치다꺼리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경제부처들이 청와대로부터 경제정책을 배급받는 것은 사실인지 몰라도 그 뒤치다꺼리에만 바쁜 것 같지는 않다. 관심은 ‘밥그릇 챙기기’에 더 있는 것 같다. 내년 봄의 2차 정부조직개편을 앞두고 재경부 기획예산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산자부 외교통상부(통상교섭본부) 등이 물고 물리면서 제로섬의 영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어떤 부처는 관할을 지키려고 사실상의 특별대책팀까지 가동해 로비전을 펴고 있다. 산하기관에 대한 낙하산인사도 러시다.
이런 마당이라 경제장관들이 간담회를 가진다 해도 진정한 ‘경제팀’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마음은 콩밭에 있고 재정개혁 정부개혁은 ‘올해 못하면 내년’이라는 식이다. 기업들에는 올해안에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다 그리라고 닦달하면서도.
IMF체제는 경제부처들에서부터 끝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배인준<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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