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민병욱/정치인은 ‘別種’인가

  • 입력 1998년 12월 30일 19시 36분


올해도 정치는 우리의 기대를 여지없이 저버렸다. 헌정(憲政)나이 50에 첫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룬데다 IMF사태라는 국가적 재앙까지 겹쳐 연초에는 정치의 모습도 뭔가 달라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해를 넘기는 오늘, 우리는 그것이 헛된 꿈이었음을 새삼스레 깨닫고 있다.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올해 줄기차게 제기하며 다그친 문제는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이었다. 그 과정과 지향점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이 개혁의 침을 맞았다. 그러나 유독 정치만은 개혁의 길목에서 비켜 있었다.

단적인 예가 국회다. 올해 국회는 49년간 어느 해도 못이룬 13차례의 국회소집과 3백9일의 최장기 회기를 기록했다. 연말에서 연초로 이어지는 지금도 임시국회는 열려 있다. 수치상으로는 1년내내 쉼없이 일한 것처럼 보이는 거창한 이 기록이 오히려 우리 정치의 참담한 자화상이다. 야당은 비리의원의 구속을 막자는 단 한가지 이유로 대여섯번씩 국회를 소집해 횟수와 회기만 늘렸다. 여당은 그 와중에 야당의원 빼내가기에 힘을 쏟았다. 법안은 제대로 심의조차 하지 않고 순식간에 ‘방망이 치기’로 처리했다. 정치를 바로잡기 위한 법안은 한건도없었다.통과된법안 일부에선 로비의 냄새가 난다.

모든 부문이 구각(舊殼)을 깨는 아픔을 겪었는데도 왜 정치만 거기에서 제외되었는가. 정치인들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과는 다른 별종이란 말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네 정치인들은 자신의 기반을 국민에 두고 그 뜻을 좇아 일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딴데 돌리고 있다. 표의 주인(표주·票主)인 국민은 뒷전이고 선거때 공천권을 행사하는 천주(薦主)의 눈치를 보느라 다급하다. 국민이야 무얼 생각하든 보스가 시키는 대로 거수기가 되고 돌격대 행동대원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재수없게’ 사정의 덫에 걸리더라도 보스들이 힘을 다해 빼주는 공생의 고리를 만들게 된다.

정치인들이 국민보다 더욱 따르는 사람은 또 있다. 전주(錢主), 이른바 ‘돈줄’이다. 정치자금이란 그럴 듯한 말로 포장된 이들 ‘뒷돈’ 대주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몸을 떤다. 행여 돈줄이 다칠세라 개혁의 화살을 몸으로 막아주는 방패 역할도 서슴지 않는다. 경제청문회를 연다면서 돈줄은 일찌감치 증인 명단에서 삭제하고 그 다음으로 왕년의 공천권자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고 뛰어다닌다. 이러니 돈과 공천권을 쥔 사람은 절대로 다칠 염려가 없다. 정치개혁이 될 턱이 있는가.

올해 정치개혁은 오늘로 완전히 물건너 갔다. 이젠 내년의 개혁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우리의 바람은 ‘정치인에 대한 영향력의 크기〓전주〉천주〉표주’의 잘못된 틀부터 깨는 것이 정치개혁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뜻보다 돈이나 공천이 정치인을 좌우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고치자는 얘기다. 개헌 문제도 그렇다. 국민의 바람을 먼저 듣고 방향을 결정해야지 2000년 총선의 공천권을 쥔 사람의 입김을 무조건 따를 일은 아니다. 정치인은 일반국민과 다른 별종일 수 없다.

민병욱(부국장대우 정치부장)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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