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김충식/장밋빛 전망과 공주병

  • 입력 1999년 1월 6일 19시 19분


벌써 ‘장밋빛’ 전망인가. 을씨년스러운 소한(小寒)추위, 잿빛 하늘 아래서 봄을 기대하고 여름을 찬미하는 소리들이 들린다. 제조업이 일부나마 기지개를 켜고 산업용 전기소비가 늘고 고속도로와 항만의 화물수송량이 달라지며 미미하지만 소비도 부동산도 꿈틀댄다는 소리들. 한국을 그토록 초라하게 만들었던 대외신인도도 반전 조짐을 보인다고 한다.

과연 실업이 줄고 일터로 나가는 가장들의 휘파람이 아침을 가른다면 얼마나 다행이랴. 하지만 낙관 기대론자들도 솔직히 두려워 하고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기업 구조조정, 대외경쟁력 회복, 외국인 투자유치가 성공하게 될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고 불안해 한다. 그저 이미 바닥을 쳤겠지, 그동안 잘도 견뎌왔지 하며 스스로 위무하는 수준은 아닐까. 우리의 실력과 밑천을, 가릴 수 없는 현실을 지난 한해 동안 너무 지독하게 확인한 것이 그나마 소득이다. 실물 금융분야의 요소들, 이른바 ‘펀더멘털’이 세계적으로 탄탄한지, 그리고 무엇보다 국경없는 시대의 세계속에 살아남을 만한 우리의 자세, 마음속의 장벽제거, 행동률의 글로벌화같은 정신적 ‘펀더멘털’이 갖추어졌는지도 뼈아프게 반성해 보았다.

국제통화기금(IMF)경제난 극복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해결해야 할 경제적 과제는 너무 크다. 하지만 정부나 기업 말고도 우리 모두의 정신적 요소, 세계에 투영된 ‘잿빛 한국인상’을 간과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한 일본 기업인은 최근 펴낸 책에서 “한국사람은 스스로 너무 과대평가하는 ‘공주병’환자와 닮았다. 세계는 그다지 한국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썼다. 가슴이 뜨끔하다. 한국적 자화자찬이 너무 심해서 세계 최초의 발명이 숱하게 보도되지만 도무지 실용화된 발명품은 어느 진열대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는 비아냥도 아프다.

한국에 오래 살아본 또 다른 일본인은 지난해 이런 글도 남겼다. “동남아 비행장에 내리면 짐을 싣는 카트엔 반드시 삼성 LG같은 기업의 선전물이 붙어 있어 반쯤 한국인이 된 나도 뿌듯하다. 그러나 김포공항이나 한국 어느 공항에도 외제 선전판이 달린 카트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는 결국 한국인의 손해로 귀착될 것이라는 충고다.

구한말 부산 포구에 미국 스탠더드 석유회사의 저장탱크를 설치할 땅을 제공한 영도 주민은 ‘매국노’라는 이유로 맞아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로부터 1백여년이 지나 대통령이 앞장서서 ‘외자 유치만이 살 길이다’고 외치는 오늘날, 수출외에는 달리 살아갈 길이 없다는 컨센서스가 이루어진 지금, 한국적 ‘자폐증(自閉症)’은 씻겨져 있는가 살펴볼 일이다. 일본인 말고도 우리를 보는 눈은 곱지 않다. 지난해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싫어하는 민족이 바로 한국인으로 조사된 적이 있다. “폐쇄적이다. 더럽다.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등의 이유로 21%가 넘는 숫자가 한국인이 싫다고 꼽았다.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도 한국인의 배타성에 늘 불만이다.

IMF관리체제라는 터널속에서 우리 자신의 부정적 요소들을 떨쳐낼 필요가 있다. 장밋빛 기대로 냉엄한 현실을 안이하게 대처하고 얼버무리거나, 공주병처럼 위안하고 자만할 수는 없다. 그런 위험한 타성들이 바로 오늘의 IMF 질곡을불러온것이다.부정의 부정(否定)을 통해 터널밖 찬란한 빛의 세계로 나아갈 때에만 진정한현실극복이될것이다.

김충식<사회부장>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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