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한 외국기업인들 사이엔 이런 말이 유행처럼 퍼져 있다. 생각할수록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 말속엔 한국 정치의 한심한 작태와 비생산성, 그리고 사회 구석구석에 번져있는 IMF 망각현상을 냉소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금의 경제청문회만 해도 그렇다. 환란(換亂)의 원인 규명이란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 시작은 했지만 그 한계는 출발부터 명백하다.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나올 게 별로 없다. 국민적 관심도 높지 않다. 어떤 내용은 여섯탕째 반복하는 것도 있다. 여당 단독이므로 당시 야당의 책임소재가 규명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렇다고 IMF사태의 총책임자인 YS를 불러낼 배짱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시간이 날아가고 에너지가 소모되고 공방과 야유와 욕설, 정치인의 무지와 관료들의 그 뻔뻔스러움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요식절차외에 기대할 것이 없음을 우리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안다.
그래도 하고 지나가지 않으면 정치도 경제도 ‘유지’가 잘 안되는 폐쇄형 사회, 그게 99년 벽두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계 시장에선 쉼없이 가공할 변화가 일어난다. 지금의 신조류는 두가지다. 메가머저(초대형 기업합병)와 인터넷 비즈니스가 바로 그것이다.
정보통신과 금융 자동차 항공 화학업종에선 이미 국경이 없어지고 영역과 규모의 파괴현상이 극심하다. 자동차업계에선 독일의 벤츠가 미국 3위의 크라이슬러를 집어삼켰다. 그 결과 미국에는 GM과 포드만 남았다. 금융쪽은 자고 나면 순위가 바뀐다. 미국의 트래블러스그룹과 시티코프의 합병, 네이션스 뱅크와 뱅크오브 아메리카의 합병은 규모가 물경 6백억달러를 넘었다.
종래와는 개념이 완전히 다른 이런 유의 메가머저가 일어나는 배경은 무엇일까.
바로 개방과 경쟁의 결과다. 미국식 자본주의 확산으로 국가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면서 세계적으로 1등만 살아남는 규모의 경제가 더 강화됐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 남으려면 몸집을 크게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인터넷은 또 다른 변화다. 세계의 정보통신을 주도하는 미국 증시의 관심은 온통 인터넷 관련 기업에 쏠려있다. 인터넷 기업의 주가가 이유없이 오르는 게 아니다. 물론 ‘거품’이란 비판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투자자가 그것을 보지 못할 바보는 아니다.
그 메시지는 바로 인터넷이 소비생활을 지배할 것이라는 변화의 속도에 대한 확신이다. 실제 미국 성인의 경우 41%가 인터넷을 수시로 이용하고 이들중 32%가 온라인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년전의 이용 23%, 구매 8%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메가머저와 인터넷의 분명한 지향점은 세계시장의 패권, 그 주역의 교체다. 이제 세계시장은 경쟁력있는 기업만 생존하는 과점체제로 재편되고 경제의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통하는 시대가 되는 것은 예고된 순서다.
법과 제도를 바꾸고 빅딜을 하고 청문회를 하더라도 이런 변화의 본질을 염두에 두고 좀 해줬으면 한다. 국민 생각을 무시하는 관료들의 오만방자한 태도와 세상 변화를 쳐다보지 않고 날뛰는 정치인을 보는 것도 이젠 정말 지겹다.
이인길<정보산업부장>kung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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