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충돌 지역대립같은 것도 거친 풍랑을 예고한다. 그리고 최근의 ‘검찰파동’으로 불거진 검찰권의 정치적 중립 혹은 크게는 ‘법조 개혁’도 화두(話頭)가 될 것이다. 실업 노사 탈북 총선 법조개혁 이런 주제들이 사회면에 드리워지지 않을까.
건국이래 검찰이 정치적으로 오해 받지 않은, 아니 오해받지 않도록 일한 시기는 거의 없지 않을까.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늘 의심받아 왔다. 그런 역사적 불신의 틀 위에서 80년대말 총장 임기제가 채택됐다. 총장이 임기를 확보하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다 덜 보지 않겠느냐는 기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초대 임기제 총장부터 국회에서 ‘권력의 촉수’로 찍혀 여야 다툼의 한가운데 서기 일쑤였고, 결국 퇴임후 무슨 복국집에서 그의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 만천하에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그 자신이나 검찰 조직 전체가 부끄러워 해야 했다. 임기제가 오히려 더 ‘정치 총장’역할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었을까. 김영삼(金泳三)정부하의 후임 총장들의 행적도 비판을 면치 못했다.
특별검사제가 제기된 배경은 그런데 있다. ‘보통’ 검찰, ‘보통’ 총장은 믿을 수 없으니까 미국에서와 같은 ‘특별검사’라야 한다는 일종의 비아냥이요, 반발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특별검사제라는 것은 언제나 야당이 만병통치약처럼 주장하고 여당은 뿌리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금의 집권당은 야당이었을 때 절규하던 특검제를 이제 못하겠다고 한다. 당시 집권당은 한사코 뿌리치던 특검제를 이제 ‘구국의 제도’라는 듯이 도입하자고 외친다.
검찰 파동의 와중에 ‘이중(二重)의 잣대’라는 말이 나왔다. 법의 잣대가 정치인에게 후하고 검사들에게만 가혹해서야 되느냐는 말이었다. 그런 취지에 동의하느냐는 차치하더라도, 법조의 숱한 문제들이 이른바 ‘이중 잣대’에서 비롯되는 것만 같다. ‘배운 것’과 행동이 다르고, 남을 재판하는 것 다르고 나를 심판하는 것이 다르다. 야당만 되면 특검제를 노래하고 여당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일종의 이중 잣대아닌가.
이번에 대전 변호사비리 사건으로 그만 둔 한 검사는 벌써 87년에 미국 연수를 다녀와서 이런 글을 발표했었다. ‘판사나 검사가 사건변호사와 식사하고 밥값을 변호사가 낸 경우 유죄판결을 받는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선물이나 할인 혜택을 받아선 안된다.’ ‘검찰청 봉투를 개인이 쓰면 벌금 3백달러를 문다.’ 그는 ‘법조 인구가 적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기준은 우리에게 더욱 엄격히 적용돼야 할 것 같다’고 경고도 했다. 나아가 ‘중앙집권적인 피라미드 형의 우리 검찰조직은 상층부가 정치권력과 친밀한 관계를 가질 때 검찰을 오염시키고 국가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짚기도 했다.
그의 분석과 예언은 맞아 떨어졌고,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그는 검찰을 떠나야 했다. 그릇된 관행임을 알면서도 떨치지 못하는 이중성. 결국 법조계, ‘칼과 저울’의 위기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해법도 거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김충식<사회부장>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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