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한진수/흔들리는 敎權

  • 입력 1999년 4월 7일 20시 43분


교육현장이 우울하다.

체벌을 한 교사를 고발하는 학생의 112신고, 학부모가 교사의 뺨을 때리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의 잇단 발생, 무더기로 교직을 떠나는 현실 등. 본보는 이같은 ‘위기의 교육현장’을 긴급진단하는 시리즈(5,6,7일자)를 실었다.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과 제자 사이가 왜 이렇게 됐으며 그 대책은 없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들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리라고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과제들이 쌓여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갈등을 선진사회로 가는 과정에서의 진통으로 받아들이고 그 매듭을 하나씩 풀어나갈 수 밖에 없다.

올해로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30년이 되는 필자는 오늘의 교육현장을 진단하며 30여년전 고1때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당시 ‘문제학생’의 징계문제를 놓고 편파시비가 있어 학생총회가 소집된 적이 있다. 시비의 초점은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어떤 학생은 가볍게 처벌하고 어떤 학생은 무겁게 처벌했다는 것이었다. 그 배경에는 가정환경이 작용했으며 부당한 처분을 내린 장본인은 교무주임이라며 학생회장 등 고3 선배들이 나와 비분강개했다. 선배들의 말을 듣고 필자도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라고 생각했다. 그때 한 선생님이 나와 일갈(一喝)했다.

“당신들에게는 모두 부모가 있다. 설령 그 부모가 도둑놈이라고 해도 자식은 그 부모를 욕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설령 선생에게 다소의 잘못이 있더라도 학생이 선생을 욕해서는 안된다. 스승은 스승이다.”

일순 학생들은 조용해졌고 학생총회는 끝났다.

어떤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때는 그래도 ‘순진했던 시대’라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진리는 하나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따지기에 앞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과 ‘있어야 할 것’은 시대가 변해도 지켜져야 하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오늘의 학교문제를 푸는데도 선생이 잘했느니 못했느니를 따지기에 앞서 ‘스승은 스승’이라는 가치관 그리고 교권(敎權)을 절대 존중하는 풍토가 회복되어야 한다.

물론 일부 학교의 일부 교사가 학부모와 학생의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구실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초등학생의 뺨을 습관적으로 때리는 교사, ‘사랑의 매’를 감정적으로 휘두르는 교사, 촌지를 주고 안주고에 따라 학생을 차별대우하는 교사 등. 일부 교사의 문제겠지만 교권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런 교직부적격 교사들을 경고―징계―파면시키는 자체정화제도도 엄격히 시행되어야 한다. 112신고를 한다거나 촌지신고센터를 두는 식의 몰상식한 짓거리를 그만두고 학교의 문제는 학교에서 처리토록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어려운 나라살림이지만 교사에 대한 대우를 우대하는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 한 법조인은 현재 판검사에 대한 예우가 너무 높다는 논란에 대해 “까놓고 말해 돈먹지 말고 공정하게 하라”는 것 아니냐고 했다.

같은 차원에서 교직우대 정책이 세워졌으면 좋겠다. 판검사가 잘못하면 ‘당신’이 망하지만 교사가 잘못하면 ‘당신의 자녀들’이 멍들지 않겠는가.

이밖에 교육당국이 오늘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각급 학교에 내려보내는 공문서들을 절반으로라도 줄여라.

한 대학총장은 기숙사를 짓는 일까지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교육공무원의 잣대로 교직자가 할 몫을 재단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진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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