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도성/과거政權 닮으려는가

  • 입력 1999년 6월 2일 19시 18분


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자꾸 과거 정권 때의 ‘비정(秕政)’들이 떠오른다. 특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고급옷 로비 의혹사건’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5공 때의 갖가지 기억들이 뇌리에 들어찬다.

5공 때의 일이다. 당시 여권 정치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언론에 ‘강경파’니 ‘악역’이니 하는 부류로 지목되는 걸 좋아했다. 오직 “대통령이 좋아하기 때문에…”라는 게 그 이유였다. 국회에서 날치기가 벌어진 날 저녁에는 청와대에서 으레 거나한 술잔치가 벌어졌다. “온몸을 던져 충성한 당신들이야말로 애국자”라는 대통령의 찬사 앞에 이른바 ‘악역’들은 ‘더 크고 좋은 자리’를 꿈꾸며 깊이깊이 머리를 조아려댔다.

그런 정치가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비통한 소극(笑劇)’, 끊임없는 은폐와 조작으로 국민을 우롱한 박종철군 사건으로 이어진 건 어쩌면 당연한 결말이었다. 당시에도 여권에서는 ‘대통령 권위’ ‘여론몰이’ ‘정면돌파’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내부적으로는 “밀리면 무너진다” “민심이 심각하다”는 식으로 현실진단이 엇갈려 극심한 분열상이 나타났다.

아무튼 국민을 명실상부한 권력의 주체가 아니라, ‘몰이’나 ‘돌파’의 대상 쯤으로 여겼던 그런 정치, 그런 정권이 어떻게 귀결됐는지는 아직도 많은 국민에게 결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일로 남아있는 쓰라린 기억이다.

지금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뤄져 민주정치 개혁정치 도덕정치의 본산(本山)을 자임하는 세력이 정치를 펼치는 세상이다. 그런데 왜 이런 기억들이 되살아 나야 하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허탈감마저 밀려온다. 집권세력이 누구든 우리 정치에서 ‘권력의 속성’이란 그토록 넘어서기 힘든 ‘마(魔)의 장벽’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멀리 눈을 돌릴 필요도 없다. 야당이야 오로지 정략적 목적 아래 사사건건 대통령의 발목을 걸고, 국정운영에 딴죽을 거는 집단이라 치자. 그러나 여당 사람들의 경우는 다르지 않은가. 누구보다 정권의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그들이 더러는 드러내놓고, 더러는 숨을 죽인 채 전하는 민초들의 소리에 다소나마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한다면 정치가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

요즘 ‘고급옷’ 파문 수습의 지표로 제시하는 국민여론조사라는 것이나, 여권 실세들 입에서 ‘마녀사냥’ ‘여론몰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오는 것이나 모두 맥락은 같다.

여론조사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빼놓을 수 없는 준거(準據)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건 참고자료일 뿐 금과옥조는 아니다. 여론조사라는 게 실시기관 시점 기법 등에 따라 편차가 나타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여러 기관의 조사결과도 아니고 특정기관이 특정시점에 실시한, 그것도 사후에 설문조차 공개하지 못하는 정도의 조사결과를 의사결정의 중요한 근거로 앞다퉈 공표한 것은 누가 뭐래도 성급하고 부적절한 처사다.

제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언론이, 그것도 한두 군데도 아닌 전 언론이 무고한 ‘생사람’을 잡는 기사를 써대고 있다는 ‘기막힌’ 발상과 시각이 횡행하는 것도 과거 정권에서 많이 보아온 행태다. 민심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볼 생각이 있다면 ‘마녀사냥’ 기사를 찾기에 앞서 ‘사모님’을 위해 가짜 대역까지 동원했다는 사진 한장이 웅변으로 말해주는 오늘의 권력현실을 되돌아볼 일이다.

이도성<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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