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낙연/두 코끼리가 싸우면

  • 입력 1999년 6월 9일 18시 37분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는 몇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일본과 중국은 아시아라는 풀밭의 두마리 코끼리다. 두 코끼리가 싸우면 풀밭은 망가진다. 그러나 두 코끼리가 뒤엉켜 사랑한다면 풀밭은 더욱 망가질 것이다.”

지금 세계의 풀밭에는 큰 코끼리가 한마리뿐이다. 미국이다. 약간 작은 코끼리로는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2020년 이내에 미국―중국―EU의 3극(極)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EU는 미국과 혈액형이 비슷하다. 중국은 다르다.

그런 미국과 중국이 몇개월째 으르렁거렸다. 중국의 미국 핵기술 절취의혹에 유고주재 중국대사관 오폭이 겹쳤다. 게다가 핵기술 절취의혹을 담은 콕스보고서가 공개됐다. 중국의 인권문제라는 해묵은 쟁점도 가세했다.

두 코끼리가 이렇게 계속 싸운다면 세계의 풀밭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망가질 것이 뻔하다. 유엔 안보리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고 세계경제도 타격을 받을 것이다. 중국경제가 악화되고 위안화가 불안해지면 아시아 각국은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한국은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이 미중 사이의 균형외교를 버리고 벼랑끝 전술로 되돌아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을 만난 북한 김영남이 곧이어 중국을 방문한 것도 바로 미중 균형외교의 반영이다. 미국과 중국이 멀어지면 북한외교의 진폭은 커질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미중 갈등이 양국에는 이익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중국의 피해는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중 대결에서 세계가 늘 미국 편을 들 것이라고 본다면 착각이다. 96년 대만해협 위기 때 동남아 국가 대부분은 중국 편을 들었거나 중립을 지켰다.

그런데도 미국은 왜 중국을 이렇게까지 경계하는가. 언제나 누군가를 경계하는 습성 같은 게 있는 것은 아닐까. 불과 7,8년전까지 ‘일본위협론’을 외치며 일본제 자동차를 부수더니 이제는 그 대상이 중국으로 바뀐 듯하다. 그러나 ‘일본위협’은 현실로 닥치지 않았다. ‘중국위협’도 아직 현실이 아니다.

또 하나는 선거다. 공화당은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대(對)중국 포용정책을 최대쟁점화할 기세다. 이것은 정치철학과는 거리가 멀다. 돌고도는 선거전략일 뿐이다. 92년 대선에서는 클린턴이 공화당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중국 유화정책을 공격해 재미를 봤다. 처지에 따라 공수(攻守)가 바뀐 것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대중정치의 허상이다.

중국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냉전이후의 세계질서를 ‘일초다강(一超多强)’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을 ‘일초’로, 중국 등 몇나라를 ‘다강’으로 보는 것이다. 중국특유의 현실감각이다. 그러나 중국은 ‘다강’에 합당한 보편적 가치의 구현에 미흡하다. 톈안(天安)문사태 이후 10년 동안 많은 진전을 이뤘다지만 정치적 자유의 신장과 정보의 투명화에서는 ‘다강’의 반열에서 멀다. 중국이 뭘 하든 세계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독선이다.

미중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라고 스스로 선언했다. 그러나 상대의 전략적 의도에 과민할 뿐 동반자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공동의 적(敵)이 없는 다극화 시대의 평시에 강대국끼리 동반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이낙연<국제부장> 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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