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한진수/청문회 有感

  • 입력 1999년 9월 1일 18시 23분


두 차례의 국회청문회를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진실이 밝혀지지도 않았고 진행 방식 역시 기대 이하 였기 때문이다.

‘고급옷로비’사건 청문회가 끝난 뒤 시중(市中)의 화제는 ‘어느 여인이 거짓말을 했느냐’ 였다.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겠으나 시중에 오가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이런 것 같다.

“A여인의 경우 별다른 뜻 없이 중간에서 다리 놓는 일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결정적인 대목에서 딱 잡아 떼는 것 같아….”

“B여인은 ‘오이밭에서는 신도 고쳐 신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오해받을 짓을 했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났지….”

“C여인은 뭘 떠벌리고 다닌 것 같은데… 막무가내로 잡아 떼는 것 아냐.”

“D여인은 비교적 있었던 대로 말하는 것 같은데… 그 사람은 잘한 게 뭐 있나.”

결론없는 청문회를 본 일반인의 결론은 ‘그림의 떡’ 같은 일이 고관(高官)과 재벌 부인 사이에서 있었다는 실망스러움이었다.

그 가운데 최순영신동아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한 말 한마디는 뒤집어 생각해볼 점이 있다.

그는 최회장이 구속된 것은 ‘검찰총장의 사감(私感)’이 작용한 결과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진술했다.

검찰총장이 사감을 가지고 재벌총수를 구속할 수 있었겠느냐마는 재벌총수의 부인이자 독실한 신앙인이요, 인텔리 여성인 그가 그런 말을 확신하는 듯한 태도로 공개된 자리에서 내뱉는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말은 권력과 검찰에 대한 극명한 불신의 표시다. 권력과 검찰에 대한 ‘불신’이 ‘신앙’처럼 굳어진 그 배경이 궁금하고 그런 일이 우리 주변에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나 어쨌든 권력과 검찰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대로 깊어져 나온 현상이라는 점에서 검찰과 권력자들은 다시 한번 크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 대한 일반인의 부정적 반응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결과뿐만 아니라 그 진행방식이 잘못된데서도 비롯된다.허구한 날 싸우며 국회 문을 닫아놓고 있던 사람들이 “시간이 없으니 답변은 간단히 해달라”며 증인이나 참고인을 윽박지르니 마치 ‘강압적인 수사’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청문회(聽聞會)는 글자의 뜻 그대로 ‘남의 말을 듣는 자리’다. 질문은 짧게 하고 답변을 상세히 하도록 하는 과정을 거치며 ‘진실과 허위’가 가려지도록 해야 할텐데 질문은 장황하게, 그것도 반복해서 하며 답변을 짧게 하라니 청문회의 의미도 모르고 청문회를 여는 것과 같았다.

‘고급옷로비’사건은 5월말, 파업유도발언은 6월초에 있었던 일이다. 이들 사건에 대해 국회청문회를 열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여야가 두세달을 티격태격 싸우다 8월말에 와서야 겨우 열며 ‘시간이 없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청문회 기간을 3,4일로 잡을 것이 아니라 ‘국회청문회를 열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다투는 기간을 줄이고 청문회 기간을 늘려야 한다. 주어진 발언시간에 쫓겨 말을 듣기 위해 부른 사람에게 ‘답변은 간략히 하라’고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또 지나간 일을 놓고 뒷북치는 청문회를 열 것이 아니라 국민적 의문이 제기됐을 때 곧바로 살아있는 청문회를 여는 생산적 국회가 됐으면 한다.

한진수<사회부장>han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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