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번 청와대 비서실 개편을 보며 이른바 ‘DJ의 초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측은 엊그제 대통령비서실장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교체방침을 발표하면서 “25일의 신당 창당준비위원회 발족에 맞춰 내년 총선에 출마할 비서진을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복잡한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현재 ‘나라정치’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 이유는 자명해진다. ‘인책(引責)’인지 ‘문책(問責)’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어떤 경우든 책임의 소재는 가려봐야 할 일이다.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은 권력수행에 오류가 있었다는 사리(事理)로도 그렇고, 앞으로 같은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敎訓)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 정권 출범 때의 이른바 ‘초심’을 다시 한번 들춰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작년 2월12일 당시 김대중(金大中)대통령당선자는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내정자들과의 상견례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이른바 ‘비서실 계명(誡命)’이다.
“비서는 비서일 뿐이다. 내각에 대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절대 안된다. 수석비서관회의는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수석비서관회의가 국무회의보다 주목을 받는 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헌법위반에 해당될 정도로 잘못된 것이다. 비서실은 정직, 공정한 자료를 토대로 좋은 정책개발에만 주력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현 정권 출범 때부터 청와대비서실의 권력적 위상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인식은 초기의 ‘계명’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핵심’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귀를 의심할만한 얘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공 사석에서 여러차례에 걸쳐 김중권(金重權)비서실장의 위상을 ‘명실상부한 권력 2인자’로 자리매김한 김대통령의 발언이었다.
당시는 정권교체 직후 잠시 완화되는 듯했던 지역감정이 거세게 되살아나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김대통령으로서는 경북출신인 김실장의 위상을 확고하게 자리매김해주고, 또 대외적으로 공표함으로써 지역편중 권력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대통령의 ‘고충’에 대한 이해와, 퇴행적(退行的) 통치행태로 야기된 국정운영의 폐해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청와대비서실이 ‘권력의 중심’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면서 초래된 폐해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당과 내각의 소외감과 그로 인한 무력화, 여야관계의 뒤틀림과 국회파행, 책임행정의 실종 등의 폐해는 민생은 물론 김대통령 자신의 발목을 잡는 가장 핵심적 문제점 중 하나였다. 이번 비서실 개편에 대해 기대를 건다면 바로 이같은 전철을 되풀이하는 ‘우(愚)’를 범하진 않으리라는 이유에서다.
다시 얘기하지만 오늘 뒤엉킬대로 뒤엉킨 국정난맥상의 실타래를 풀 길은 먼데 있지 않다. 위나 아래나 22개월여전 김대통령이 설파했던 ‘비서실 계명’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실천의지를 다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도성<부국장서리 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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