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칼럼/산에는 꽃이 피네]세상만사 뿌린대로 거둔다

  • 입력 1998년 3월 15일 21시 42분


며칠전에 남도를 다녀왔다. 섬진강변에는 매화가 구름처럼 피어 있었다. 경제적인 불황과는 상관없이 이 땅의 여기저기서 꽃이 피어나고 있다. 봄은 남쪽에서부터 꽃으로 피어나고, 겨울은 북쪽에서부터 눈으로 내린다. 그 어떤 세월에도 어김없는 이런 계절의 순환이 우리를 받쳐주고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게 여겨졌다.

▼ 한심스런 「정치꾼들 작태」 ▼

이와 같은 순환은 자연계의 질서일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도 적용된다. 한쪽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환인데 반해서 다른 한쪽은 인위적인 순환이다. 지금 우리 앞에닥친국제통화기금(IMF) 한파는 밖에서 휘몰아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가 불러들인 인위적인 재난이다. 그러니 세상일은 우연히 되는 일도 없고 공것도 없다. 모두가 뿌려서 거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밀려나 그 가족들과 함께 살길이 막막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는 절박한 현실이다. 그런데도 국민의 세금으로 번쩍거리면서 지내고 있는 이 땅의 정치꾼들은, 내가 옳네 네가 그르네 하면서 수렁에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실로 한심스러운 작태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무엇엔가 사로잡히면 평온하지 못하다. 마음이 아무것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을 때에만 자유로울 수 있고, 그때 그 마음은 본래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 기왕에 쥐었던 권력을잃었다고해서 너무 연연해서도 안되고, 새로 얻었다고 해서 함부로 휘둘러서도 안된다.잃은쪽이나 얻은 쪽이나 순환의 질서 앞에 겸허해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을 우리는 익히 들어왔다. 당리당략에만 혼을 빼앗겨 민심을 잃는다면 그런 정당은 미래가 없다. 집안에 불이 났으면 모두가 나서서 함께 불을 끄는 일이 시급한데, 네탓 내탓을 따지기만 한다면 어떻게 불이 꺼지겠는가.

우리 시대에 정권이 바뀐 것도 민심에서 싹튼 순환의 질서로 보아야 한다. 말이 없던 민중이 선택한 순환의 질서다. 그래서 말없는 민중을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요즘의 정치적인 혼미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민중은 머지않아 있을 지방선거에서 순환의 질서를 다시 한번 보여줄 것이다. 정치꾼들은 이런 민중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집권 여당은 지나간 정권에서 저질러진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순리를 벗어난 무리수를 써가면서 강행한 그 폐해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이끌어가는 입장이니 자만하지 말고 한걸음 물러설 줄도 아는 아량과 여유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어려운 결단이겠지만, 총리인준 문제로 정국이 꼬여 안 풀리면 차선책을 쓸 수도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당사자의 지혜로운 선택이 따라야 할 것이다. 눈앞 일로만 보면 첫 라운드에서 참패하는 것 같겠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지는 길이 곧 이기는 길이다. 나라일이 위급할 때 자기 한 몸을 희생할 줄 아는 그 도량과 용기가 ‘서리’라는 가시방석보다 훨씬 명예로울 것이다. 이 또한 정치적인 역량으로 평가될 것이고,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현명한 전술일 수도 있다. 왕년의 집권 여당에서 현재의 야당으로 물러앉은 한나라당은 권력의 덧없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 민중을 두려워할줄 알아야 ▼

권력도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순환한다는 교훈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무고한 국민이 겪게 된 이런 재난이 어떻게 해서 초래되었는지, 집권 여당이었던 자신들의 책임소재를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못먹는 밥에 재를 뿌리고 있다는 국민적인 지탄을 받지 않도록 각성해야 한다.

사마천은 그의 ‘사기(史記)’에서 말한다. “정치의 도리는 화(禍)가 될 수 있는 일이라도 그것을 잘 활용하여 복이 되게 하고, 실패를 돌이켜 성공으로 이끄는 데에 있다.”

누가 말했던가. 사람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려 해도 정치쪽에서 관련해 온다고.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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