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반세기에 가까운 공산치하를 겪으며 문화와 교육, 민주주의의 전통은 빛이 바랬다. 체코는 이 시기를 ‘역사의 단절’로 보고 1989년11월 ‘벨벳혁명’이 가져온 공산주의의 종말을 역사로의 복귀로 해석하고 있다.
체코는 독일의 바바리아와 함께 중세유럽 최대의 부국을 이룩하고 찬란한 문화를 구가했다. 수도 프라하를 중심으로 하는 보헤미아는 은생산의 중심지이자 교통 상공업의 요충지였다.
신성로마제국의 찰스대제가 설립한 중부유럽최고의 명문 프라하의 찰스대는 올해 개교 6백50주년을 맞았다. 올해 국가수립 80주년을 기념하는 체코는 또한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과 함께 실시한 민주주의를 민족적 전통의 하나로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체코는 나치의 점령(1939), 공산주의 쿠데타(1948),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군과 바르샤바동맹군의 프라하침공(1968)을 거치며 시련을 겪는다. 체코는 이 시기를 민족적 전통에 대한 야만세력의 억압으로 간주한다.
그러면 체코가 추구하는 역사로의 복귀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체코는 공산체제 하에서 역사의 단절을 서구로부터의 단절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로의 복귀를 유럽, 즉 서구로의 복귀로 보는 듯하다.
공산체제가 붕괴한 뒤 체코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서구로의 복귀작업을 서둘러 왔다. 서구로의 복귀작업은 정치 안보분야에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입과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의 유럽연합(EU)가입으로 모아진다.
체코는 폴란드 헝가리와 함께 빠르면 올해말, 늦어도 NATO창립 50주년이 되는 내년 4월에는 NATO회원국이 된다. 체코는 또한 폴란드 헝가리와 함께 2004년을 목표로 EU가입을 서두르고 있다. 서구가 지난 50년에 걸쳐 이룩한 EU체제를 10년내에 따라잡으려는 체코의 노력은 잃어버린 과거를 찾으려는 집념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체코의 이같은 노력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체코는 작년까지만 해도 ‘동구의 보석’으로 서구국가 및 기업의 총애를 받아왔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재정위기 이래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있다. 경제위기의 후유증으로 6월엔 공산체제 붕괴 후 처음으로 사회당정권이 탄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당정권은 보수당정권의 외교 경제정책을 그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혀 서구로의 복귀라는 기조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밖에 국유경제의 민영화과정에서 부패와 각종 경제범죄라는 부작용도 수반됐다. 이곳 언론은 최근 국제반부패기구(TI)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순위에서 체코가 37위를 차지한 사실을 보도하며 부패가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결국 사회의 도덕적 쇠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反)부패법 제정 등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역사로의 복귀를 위한 프라하의 노력도 결국 부패와의 투쟁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함명철<주체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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