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명의 실패한 대통령 ▼
러시아의 경우에는 옐친이 첫번째 민선 대통령이어서 전례(前例)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는 2차대전 종전 이후만 따져 보아도 암시적인 통계를 잡을 수 있다. 그것은 ‘재선, 8년 임기 완료’에 성공한 대통령이2명뿐이고실패한대통령이 무려 7명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클린턴이 물러나게 된다면 전체 대비는 2대8이 된다. 구체적으로 따져 보자. 루스벨트의 병사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트루먼은 그 뒤 한차례 당선됐으나 한국전쟁의 장기화(長期化)에 싫증을 느낀 여론에 밀려 재선을 포기해야 했다. 반면에 후임자 아이젠하워는 재선에 성공했고 무사히 물러났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뉴프런티어’의 기수 케네디는 첫 임기중에 암살됐다. 후임자 존슨은 그 뒤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됐으나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여론 앞에 무릎을 꿇고 재선을 포기했다. 그의 후임자가 닉슨으로, 중국과의 관계개선 및 소련과의 데탕트 등 눈부신 외교업적에 힘입어 재선에 성공했으나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물러났다.
후임자 포드는 잔여임기를 채울 수 있었을 뿐 그 뒤의 선거에서 ‘도덕정치’의 깃발을 든 카터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약한 대통령’으로 각인된 카터는 ‘강력한 미국’을 표방한 레이건에게 패배해 단임으로 끝나고 말았다. 레이건은 공약 그대로 미국의 국위를 높이고 경제를 일으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 결과 그는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됐을 뿐만 아니라 임기를 다 채울 수 있었고, 나아가 부통령 부시를 백악관에 입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부시는 걸프전의 승리와 공산주의의 붕괴라는 국제정치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에게 패배해 단임으로 끝났다. 클린턴이 두번째 임기를 무사히 마칠 것인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탄핵의 위협에 직면하면 조기(早期) 하야의 길을 밟게 될지 모른다.
▼ 독선-탐욕-무능의 역사 ▼
‘중임 8년’에 실패한 원인은 대통령마다 다르다. 정책을 잘못 써서 국민의 지지를 잃었기 때문인 경우(트루먼 존슨 포드 카터 부시)가 많지만 개인적인 과오로 인한 경우(닉슨, 그리고 만일 사임하게 된다면 클린턴)도 있고 암살의 경우(케네디)도 있다. 어떻든 클린턴을 제외하고도 2대7의 큰 차이로 실패율이 높다는 것은 미국에서 대통령직의 성공적 수행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해준다. 이 사실이 ‘불행한 대통령들’의 기록에 자존심을 다쳐온 우리 국민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차원이 달라 비교조차 성립되기 어렵다. 그러나 헌정 운영 50주년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 한번 회고해볼 만하다.
우리의 경우 현재의 공동정권을 논외로 한다면 8명의 최고 권력자가 있었다. 이승만(李承晩) 윤보선(尹潽善) 장면(張勉) 박정희(朴正熙) 최규하(崔圭夏)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이 그들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그들 모두 불행한, 또는 실패한 집권자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해외망명(이승만), 강제퇴임(윤보선 장면 최규하), 암살(박정희), 퇴임 이후의 구속(전두환 노태우), ‘국가파산의 실정(失政)’ 비난 속의 부자유스러운 생활(김영삼) 등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면 그들은 어째서 그러한 길을 밟게 됐던가. 각자 편차가 있으나 대체로 공통된 것은 독선과 탐욕 그리고 무능이다. 독선과 탐욕이 커지면 반드시 법을 짓밟으면서까지 무리한 짓을 하게 되고 무능하면 나라를 망쳐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헌정사의 비극과 수치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최고 권력자는 우선 독선과 탐욕을 버려야 하며 평소부터 국가경영을 위한 능력을 길러야 한다.
▼ 연줄초월 인재 기용을 ▼
마침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를 두 축으로 하는 공동 정권 출범 6개월을 맞는다. 이 두 지도자가 실패하지 않아야 우리는 겨우 2대8의 성공률을 갖게 된다. 부디 직업적인 아첨꾼들, 이 기회에 한 건(件) 해야겠다고 벼르는 정상배를 멀리하고 독선과 노욕이 자라지 않도록 매일같이 스스로 경계하면서, 유능하면서도 양심적인 일꾼들을 지연과 학연에 얽매이지 말고 널리 기용해 위기에 빠진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가기 바란다.
김학준<인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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