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칼럼]佛誕日에 다시 읽는 카터의 이임사

  • 입력 1999년 5월 21일 19시 28분


미국이라고 해서 전직과 현직 대통령 사이가 언제나 신사적이지는 않았다. 80년 대선에서 현직 카터를 누르고 승리한 레이건의 아들이 카터를 ‘재선을 위해선 자기 어머니도 팔아먹을 사람’이라며 공개적으로 모욕한 데 대해 카터는 “대통령으로서 나의 가장 큰 실수는 레이건이 당선되게 만든 일”이라고 응수했고, 50년대에는 전임자 트루먼과 후임자 아이젠하워 사이에서 험한 말이 오갔다. 전현직 사이는 아니지만, 60년에 케네디와 맞붙었던 닉슨은 케네디의 ‘부정선거’로 자신이 낙선했다고 두고 두고 비난했다.

미국이라고 해서 전직 대통령이 늘 점잖게 처신한 것만은 아니었다. 레이건은 “일본 사람이 주는 강연료 2백만 달러에 이끌려 일본에 가서 미국 전직 대통령의 위신을 팔아먹는 강연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포드는 “전직 대통령의 경력과 대기업 이사직을 맞바꿔 큰 액수의 연봉을 받으며 골프나 치러 다닌다”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에는 백악관을 떠난 뒤 국민의 존경을 받는 업적을 보여 준 전직 대통령들이 많았다. 3대 제퍼슨은 고향으로 돌아가 버지니아대를 세우고 총장으로 봉직하면서 오늘날 손꼽히는 세계적 명문으로 키웠고, 6대 애덤스는 하원의원으로 17년 동안 활동하는 가운데 노예해방운동을 펴다가 의사당에서 죽었다. 27대 태프트는 예일대 법대 교수로 새롭게 출발한 뒤 대법원장이 됐으며, 31대 후버는 스탠퍼드대의 ‘전쟁 평화 혁명 연구소’로 돌아가 연구와 집필에 전념했다. 가장 성공적인 예는 카터라고 하겠다. 그는 ‘약한 대통령’으로 비친 탓에 재선에 실패했다. 그래서 그가 이임할 무렵에 갤럽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역사에 ‘뛰어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으로 대답한 사람은 3%에 지나지 않았으며 ‘평균 이하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사람은 46%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비교한 정치사학자 더글러스 브링클리 교수에 따르면 그는 오늘날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전직 대통령’으로 꼽힌다.

무엇이 평가를 바꾸어 놓았을까? 그 해답을 우선 그의 주일학교 고별설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큰 사람’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담은 누가복음 9장 46절에서 48절까지를 읽은 뒤 무엇이 가장 큰 성취인가 물었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황제가 되는 것이? 그리고는 성경의 그 구절을 인용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가장 큰 성취”라고 스스로 대답했다. 뒤따른 이임사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라는 호칭보다 위에 있는 유일한 호칭, 곧 시민이라는 호칭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통령의 짐을 내려놓습니다.” 평범하면서 심금을 울리는 명연설이었다.

이 고별설교와 이임사에 충실하여, 카터는 ‘봉사하는 시민’의 길을 일관되게 걸어왔다.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미국 빈민가에서는 물론 후진국 오지에서 손수 대패를 들고 목재를 다듬는 한편 세계적 분쟁 지역들을 찾아다니며 평화를 주선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카터의 대통령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칭찬하면서 백악관을 넘어서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는 ‘1인 유엔’ 카터의 발걸음에 애정을 표시한다.

한국에는 4명의 전직 대통령이 생존해 있다. 그들 가운데 추종자를 거느리고 자신의 ‘지역구’를 돌아다니며 유별난 언행으로 국민을 분노하게 하는 이들이 있음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착한 마음을 해치는 세가지의 번뇌’를 삼독(三毒)이라 하여 탐(貪:무엇을 가지거나 차지하고 싶은 욕심) 진(瞋:자기 의사에 어그러짐에 대해 성내는 일) 치(癡:너무 미련하고 우둔해서 미친 듯한 짓을 하는 일)를 꼽는다.

그 언행들에서 우리는 탐 진 치를 본다. 마침 불탄일이다. 카터의 고별설교와 이임사를 읽으며 삼독을 버리려고 노력함이 어떨까. 전직 대통령으로서 기대되는 역할은 둘째로 하고 시민으로서의 역할부터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자성해 볼 일이다.

김학준〈본사 논설고문·인천대총장〉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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