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칼럼]新黨 성패는 당내 민주화에

  • 입력 1999년 9월 10일 18시 37분


정당은 왜 만드는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만든다. 선진국들의 경우 예외없이 먼저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을 통해 정권을 장악했으며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놓친다고 해도 야당으로 남았다가 다시 집권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당들의 수명이 길어 거의 모두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고 할아버지에서 손자에 이르기까지 같은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선진국의 정치안정이 이뤄지는 데는 바로 이 ‘대를 이어 계속되는 정당 동일시 현상’이란 요인이 있다.

▼‘1회용 반창고’역할▼

우리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반세기에 걸친 정당의 역사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정당이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정당을 만들어내며 권력이 만들어낸 정당은 그 권력의 종말과 동시에 몰락한다”는 것이리라.

이러한 철칙의 예외가 현 정권이다. 우리 정당사에 유일하게 먼저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 정당사에 영예로운 전통을 만들어낸 그 정당을 스스로 허물고 권력을 통해 신당을 창당하고 있으니 바람직하지 못한 철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당 창당의 발기인 구성 역시 지난날 역대 정권의 발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정당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비정치권의 각계 각층에서 전문가들을 영입한 것이다. 정치학에서는 이 방식을 ‘특별 선발’이라는 뜻의 코옵테이션(cooptation)이라고 부른다. 각자의 분야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한 비정치적 엘리트들을 기존 정치권이 끌어들임으로써 구조적으로 분화되고 기능적으로 전문화된 산업사회 각 부문의 지식과 희망을 정치과정과 정책에 효율적으로 반영시키겠다는 취지이다.

뜻은 좋건만 우리의 정당사를 돌이켜보면 이 방식은 대체로 성공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첫째, 기성 정치권은 그들의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그저 장식용으로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회용 반창고’로 끝나기가 일쑤였다. 지난 15대 총선 때 국민회의에 화려하게 코옵테이션됐던 한 인사는 “나는 3년도 지나지 않아 헌 사람이 됐다”고 회한을 털어놓는다.

둘째, 영입된 인사들 스스로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의 능력과 한국적 정치에서의 능력에는 큰 차이가 있다. 불행히도 여전히 돈의 영향력이 큰 정치판에서 돈과는 대체로 거리를 두고 살아온 그들의 행동반경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어디 돈뿐이랴. 한국적 정치는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패거리 가담’을 요구하는데 그들은 체질적으로 여기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총선 공천이 시금석▼

그렇다면 그들은 글자 그대로 전문가로서 정직한 비판과 합리적인 대안의 목소리를 용기있게 내야 한다. 기성의 틀을 깨뜨리고 새로운 발상을 끊임없이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잘못된 기존 체제와 관행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기를 들고 개혁을 외쳐 그것을 고쳐놓는 데 일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기성 정치권이 이들의 외침을 무시하거나 ‘항명’으로 본다면 코옵테이션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이 점에서 당내 민주화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된다. 당의 결정 과정이 총재에 의해, 몇몇 실세들에 의해 좌우된다면 그 당은 아무리 많은 신인과 전문가를 끌어들인다 해도 활력을 얻기 어렵고 국민으로부터 멀어진다.

당내 민주화로 가느냐 못가느냐의 시금석은 16대 총선의 공천이라 하겠다.

21세기의 첫 해에 실시되는 이 선거의 공천이 여전히 20세기적인 하향식으로 이뤄진다면 당내 민주화는 구두선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당의 발전에 대한 기대는 물거품이 된다. 발기인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신당이 16대 총선용으로 끝나지 않고 한국 정당사에 수명이 가장 긴 정당으로 남도록 하려면 어느 무엇보다 윗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과감히 내 우선 당내 민주화가 이뤄지도록 힘써야 한다.

그 일에 성공하면 신당도 성공하고 자신들도 정치적으로 성공하게 될 것이다.

김학준〈본사 편집논설고문·인천대총장〉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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