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덜된 개혁 부작용 속출▼
그런데 수상 발표로부터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오늘의 시점에서 이미 국민 사이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은 어떤 까닭일까. 물론 진심으로 축하하고 같은 민족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이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으로 대하는 이도 때때로 만나게 된다. “올해 받았으니 천만 다행이었지, 올해 못받았더라면 내년 수상에 집착해 국정이 노벨평화상 수상을 중심으로 운영될 뻔했고 나라살림은 더욱 엉망진창이 될 뻔했다”는 비아냥을 시정(市井)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듣게 된다. 비아냥거리는, 또는 별로 축하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사람의 심정은 무엇일까. 원래부터 반DJ여서, ‘반개혁적’이어서, ‘냉전수구세력’이어서 그럴까.
돌이켜보면, 이 정부는 출범 이후 ‘개혁’이란 이름 아래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놓았다.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밀어붙인 의약분업은 의사들을 적대적으로 만들어 놓았고 약사들로부터도 원성이 나오게 만들어 놓았으며 대다수 국민을 피로하게 만들어 놓았다. 교원정년단축으로 초등학교에서는 교원이 모자라 명예퇴직금까지 다 받고 이미 떠난 교원들을 애걸복걸하다시피 모셔 오는 형편이 되니 수급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않고 밀어붙였느냐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연금운용을 잘못한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은 전혀 없이 공무원연금에 손을 대고 나서자 우선 정서적으로 반감을 갖게 됐다.
금융개혁만 해도 도대체 평범한 시민으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난 책임자들의 말과 지금 책임자들의 말이 너무 달라 신뢰가 가지 않는 판에, 국민의 혈세나 다름없는 공적자금 투입은 왜 이렇게 많은가. 말만 나왔다 하면 수십조원이다. 국민세금 수십조원이 납세자의 느낌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쓰이는 것 같은데도, 민형사적으로 책임을 졌다는 사람은 거의 안보이니 과연 이렇게 국민은 늘 봉이 되고, 정책실패는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우물우물 미봉에 그쳐도 좋다는 말인가. 개혁의 동기가 아무리 좋아도 결과가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회기강은 많이 약화됐다. 경제는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을 가보자. “IMF가 지금 오기 시작한 것 같다. 장사가 이렇게 안된 때가 없었던 것 같다”고 아우성인데, 이것을 엄살로만 보아야 할 것인가. 경기도의 한 공단에서는 가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부도가 소리없이 계속된다는 탄식이다. 정권의 성적표라고 할 수 있는 종합주가지수는 DJ의 대통령 취임 때보다 떨어져 있다. 노벨평화상 약발이 서지 않는 모양이다. 국민의 살림살이가 이렇게 힘들어지다보니 ‘한반도 냉전구도의 해체’라는 대정치가적 비전 아래 진행된 대북 경제협력은 사심 때문에 ‘북에 퍼다 주는 것’으로 대체로 비치고 있다.
▼민생경제부터 챙기길▼
김대통령은 다행히 앞으로는 내치에 더욱 힘을 써 경제를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다짐했다. 믿어달라고까지 표현했다. 수상 직후의 첫 조치로 말썽많고 초법적이기조차 했던 사직동팀을 해체시킨 것, 또 고향 마을에서 노벨평화상 수상기념공원을 짓겠다는 것을 못하게 한것 등은 DJ에 대한 믿음을 높여주었다. 그 점을 인정하면서, 국민의 주문을 점잖은 어투로 바꿔 전달하고자 한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만큼 세계적인 정치가의 반열에 서서 국제평화와 국제외교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붕 뜨지 말고 부디 발을 이 땅에 굳건히 딛기를 바라며, ‘역사적’인, ‘세계적’인, ‘민족적’인 과제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국내의 산적한 과제들 전반에 걸쳐, 특히 민생경제에 대해 새롭게 돌이켜보고 전념하기 바란다. 벤허가 전차경기의 승자로 유대인의 영웅이 된 뒤 처음 찾아간 곳이 문둥이 계곡에 버려진 어머니와 여동생이었음을 상기하고 싶다.
김학준<본사편집·논설상임고문>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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