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칼럼]이광형/고스톱과 디지털혁명

  • 입력 1999년 4월 19일 20시 04분


《동아일보는 20일자(화요일)부터 격주로 ‘밀레니엄 칼럼’을 게재합니다. 격동의 20세기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새로운 천년에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를 조망합니다. 밀레니엄 칼럼에서 첨단 과학과 사회 문화의 미래를 읽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니 별 희한한 사기꾼도 있다. 화투장에 적외선 발광물질을 칠해놓고 고스톱을 친 것이다. 적외선 카메라로 상대방의 패와 바닥에 엎어진 패를 모두 읽어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고스톱이란 세 명이 동등한 양의 불확실성 속에서 개인의 능력과 지식을 동원해 작전을 구사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세 명이 같은 조건에서 친다면 개인의 승률은 33%일 것이다. 그런데 앞의 사기꾼처럼 다른 사람의 패를 모두 알고서 친다면 백전백승이었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바닥에 쌓인 패 중에서 자신이 가져갈 한 장을 미리 보고서 친다면 승률이 어떻게 될까. 모의실험 결과에 의하면 50%이상 올라간다고 한다.새로운 천년이 열리는 21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이 많은 세기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속도를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혼돈과 변화는 그 동안 우리 인류가 경험해 보지 않은 것으로 ‘디지털혁명’이라고도 불린다.

디지털이란 원래 아날로그와 대비되는 말로 정보를 저장하고 전송할 때 0과 1로 기호화해 나타내는 방식이다. 정보의 저장과 전송의 효율이 좋아져 거의 모든 컴퓨터와 통신기기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정보를 디지털로 표현하는 이 방식이 문명사적인 변화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해서 디지털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제 ‘거리’의 개념이 변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선명한 음질과 화면으로 통화할 수 있게 됐다. 아무리 먼 거리에 있는 정보도 인터넷을 이용하면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경제체제가 급변해 경제에 관한 한 국경이 없어질 것이다. 문화예술의 영역도 예외가 아니어서 디지털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경제의 핵심이 되는 하드웨어의 시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이 가치를 발휘하는 소프트웨어의 시대로 바뀐다. 도대체 어떻게 된다는 말인지 상상도 잘 되지 않고 골치만 아픈 것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들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마치 고스톱에서 바닥에 열려 있는 패들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숨겨져 있는 많은 패들이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 이것들은 아직 과학기술자의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또는 기술발전의 방향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해 미지로 남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성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명확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실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남보다 먼저 정보를 수집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다. 마치 고스톱 판에서 바닥에 엎어진 패를 미리 한 장씩 들춰보는 것이다. 고스톱에서는 이런 행동이 불법이지만 다행히 우리 세상에는 매우 합법적이고 손쉬운 방법이 있다. 그것은 책과 신문잡지에서 과학기술 및 정보에 관한 글을 읽는 것이다.다시 강조할 필요도 없이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는 동력원이 바로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과학기술 기사에는 미래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지금까지 골치 아프다고 넘겨버린 사람들도 고스톱 판에서 한 장을 먼저 뒤집어 보는 기분으로 정보와 과학에 관한 기사를 정독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광형<한국과학기술원 교수·전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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