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칼럼]황상익/인간생명을 창조하는 시대

  • 입력 1999년 5월 3일 20시 03분


20세기 후반 첨단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의학은 인간 건강의 소극적 관리자로부터 인간 생명의 적극적인 창조자로 바뀌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의학은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이는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유전자 재조합과 생명복제 등의 기술을 이용해 아예 질병의 위협에서 해방된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꿈까지 꾸게 된 것이다.

이렇듯 의학이 창조주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게 됨에 따라 앞으로 그 힘의 관리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그와 더불어 현대의학이 주변화(周邊化)했던 ‘전인성’(全人性)에 대한 요구가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의학은 대체로 1천년 또는 5백년을 단위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기원전 5세기 무렵 그리스에는 그때까지의 초월적 마술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합리적 의학이 출현했다. 그리스 의학을 현대 의학의 뿌리라고 하는 까닭은 바로 그 합리성에 있다. 그리스 의학의 특징은 균형과 조화를 강조한 것이다. 즉 사람을 구성하는 네가지 체액 사이에 균형이 잘 이루어지면 건강한 상태이고, 그것이 깨어지면 병적인 상태이다.

따라서 의사의 역할은 깨어진 균형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인성’은 한의학의 핵심적 담론인 음과 양의 조화와 매우 흡사한 점이 있다.

1천년을 지속하던 합리적 의학의 전통은 중세에는 침체를 겪는다. 유일신이 모든 일을 주관한다고 여긴 암흑시대 5백년 동안 서양에서는 이성에 바탕을 둔 세속 의학은 존재조차 하기 어려웠다. 중세 후기 5백년은 의학이 복권된 시기였지만 그리스 전통의 답습에 머무는 정도였다.

1500년대부터 오늘까지 의학은 발전을 거듭하였거니와 종래의 의학과는 크게 달라졌다. 현대의학은 ‘합리성’이라는 점에서는 고대의학을 계승하였지만 ‘전인성’을 주변화한 점에서는 과거와 거의 단절된 셈이다. 해부학의 발달에서 비롯한 현대의학은 국소(局所)적인 질병관을 탄생시켰다.

또 인체를 분석적인 현대과학의 연구대상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의학은 놀라운 힘을 가지게 되었다. 온갖 질병의 정체가 밝혀졌으며 적절한 치료법도 많이 개발됐다.

그에 따라, 의학만의 공은 아니지만, 질병 발병률과 사망률이 크게 떨어져 인간의 수명은 산업혁명기의 40세 미만에서 현재의 70세 남짓으로 불과 한두 세기 안에 거의 두배가 됐다.

현대의학은 인체를 분절화 객관화하고 환자 대신 주로 질병을 추구함으로써 많은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 대가로 환자, 즉 인간은 의학에서 점차 소외됐다. 많은 사람이 불평하듯 환자는 독립된 인격체라기보다는 질병의 창고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이 점에서 현대의학에 대한 인간의 저항은 예고된 것이었다.

특히 여러 가지 전염병의 극복으로 질병의 패턴이 만성병 위주로 변화해 환자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게 됐는데도 의학은 아직 거기에 걸맞도록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의 첨단의학 발전에서 보듯이 종래의 모습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의학에서 환자의 역할이 복권돼야 한다는 주장이 고대의학으로의 복귀나 요즈음의 이른바 ‘대체의료’와 곧바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학이 ‘전인성’의 요구를 그 ‘과학성’ 내에 수용하지 못할 때에는 머지않아 존재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황상익<서울대교수·의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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