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만화같다’는 말은 저급한 것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정치를 희화화할 때, 세태를 개탄할 때 만화같다고 말한다. 영화 감독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것도 ‘구성이 만화같다’는 말일 것이다. ‘만화같다’는 말의 부정적 의미는 만화방을 상대로 만든 졸속 만화가 쏟아지던 시절의 산물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80년대 이후 만화 주간지가 등장했다. 90년대엔 만화방에서 보는데서 도서 대여점에서 빌려보거나 서점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개념이 바뀌었다. 부모의 눈을 속여 만화방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당당히 만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만화에 익숙한 세대의 등장으로 만화적 기법은 다른 분야에까지 파급됐다. TV 버라이어티쇼에서 코미디언의 말재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자막과 말풍선이다. 영상매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최근의 TV는 자막같은 문자정보를 대량으로 사용한다. 그림과 문자를 동시에 사용하는 만화적 기법의 차용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사진을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형형색색의 사인펜으로 가공하고, 흰색 사인펜을 동원해 말풍선과 자막을 그려 넣는다. 사진을 만화의 한 컷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사진 네 장을 가공해 4단 만화처럼 만들기도 한다. 사진을 액자에 넣어 고이 간직할 귀한 물건이라고 여기던 나이 든 세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만화가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영화 ‘도베르만’. 이 영화로 신세대 감독 잔 쿠넹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총 한방으로 트럭이 멈추고 그 반동으로 운전사가 수 십미터를 날아와 주인공의 발 밑에 멈추는 과장. 이 영화 전편에 흐르는 것은 만화적 기법의 차용이었다. 이 영화를 만화같다고 혹평한 사람은 소수였다. 오히려 신선하다는 찬사를 들었다.
일본 만화가 세계를 휩쓸면서 전세계 신세대들은 알게 모르게 만화적 기법에 친숙해져 있다. 만화는 꿈의 산업인 문화산업의 하나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만화적 기법이 장르를 초월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김지룡(신세대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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