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윤계섭/'벤처금융' 활성화 하려면

  • 입력 2000년 3월 5일 21시 22분


벤처기업에서 벤처는 모험이란 뜻이다. 중세 유럽에서 해운업을 하던 선주는 배가 침몰할 경우에 배라는 자본만을 잃어버리는 유한책임을 부담한다. 그러나 선원들은 생명이라는 무한책임을 지게 되는데 이러한 조직의 형태가 벤처기업이다. 산업혁명 이후 주식회사로 발전하는 원초적 기업의 형태인 벤처기업은 미국에서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극성기를 이루고 있다. 벤처기업의 젖줄은 이들에게 주식을 받고 자금을 대주는 벤처금융이고 이들을 유지하려면 벤처기업 주식이 거래되는 코스닥과 같은 자본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해야 한다. 80년대 중반에 상공부는 창업투자 금융을 50개 이상 육성하였으나 대부분 부실화되었는데 이는 벤처금융의 특성을 모르는 경영자들과 코스닥 같은 장외시장이 발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벤처기업의 성공률은 3∼5% 정도로 점점 낮아지고 있지만 소수의 성공이 큰 수익을 올려 벤처금융은 일반 금융기관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보인다. 그러나 많은 벤처기업이 나스닥에 등록할 때까지 자본 회임 기간이 길어지고 경쟁이 치열해져 등록도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성수기에 들어가 있는 벤처기업도 기업의 자체 수익보다는 주가상승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거래소에 상장한 기업에 비해 코스닥 등록기업이 주주에게 관심을 보다 많이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데 이는 부채조달의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나스닥에 등록되어 있는 많은 기업은 연간 수익에 비해 주가가 너무 높아 기존 증권이론을 수정해야 할 지경이다. 예를 들어 상장기업에서 많이 쓰는 주가수익비율(PER)은 주가 매출액비율(PSR)로 바꾸어 적용한다. 나스닥의 간판기업인 아마존 서점과 같이 이익이 매우 낮은데도 주가가 오르는 이유는 미래기회 가치를 평가한 결과로서 기존 재무제표로서는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품여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성공하면 거품이 아니고 실패하면 거품이라고 평할 뿐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다. 주가상승률이 높은 코스닥시장이 거래소 시장보다 좋아 보이지만 세상에 공짜란 것은 없다. 위험의 대가로서의 투자수익은 실패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코스닥시장의 급성장이 1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 실패사례가 크게 노출되지 않고 있으나 실패기업이 나오기 시작하면 냄비근성인 투자자들은 쉽게 돌아서 코스닥시장은 과거 장외시장과 같이 실패하고 잊혀진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을 꺼지지 않도록 코스닥시장의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숫자상의 목표일 뿐인 벤처기업 1만개 육성보다는 벤처기업과 코스닥시장의 순환고리를 선순환으로 계속 유지해야 한다.

벤처기업은 잡초와 같아서 생명력이 강하다. 명목상의 중소기업 정책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뒤져있는 대만의 중소기업이 우리보다 크게 발전한 배경에는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적었기 때문이다. 간섭과 규제가 적은 정책이 육성정책보다 훌륭한 지원정책이다.

그러나 코스닥시장은 투자자보호를 위해서 보다 투명하게 운영하여야 한다. 등록부터 거래과정 공시절차에 이르기까지 거래소시장 못지않게 신속 정확하게 운영해야 한다. 미국의 나스닥시장이 뉴욕증권거래소와 경쟁하게 되는 배경에는 출범부터 거래원을 통하지 않고 컴퓨터 거래로 신뢰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불을 쫓아 날아드는 부나방의 운명과 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투자위험을 인식하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 투자하는 회사가 무슨 기술을 가지고 있고 경영자는 어떤 성격인지 회사전망은 어떤지 알아야 한다. ‘묻지마’ 투자는 돈을 흘려버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여러 종목으로 나누어서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 이러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 벤처기업의 실력을 평가하는 신뢰성 있는 회사의 등장이 아쉽다. 실패하지 않는 투자자는 운에 따르기보다 먼저 예측과 전망을 위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윤계섭(서울대학교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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