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강종만/체신예금 한도 줄이자

  • 입력 2000년 6월 19일 19시 11분


체신금융은 정부 기관인 우체국이 취급하는 금융으로 수익성보다는 공공성을 중시하며 전세계적으로 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과의 경쟁을 피하도록 금융 업무가 제한되고 있다. 그런데 97년 외환 위기 이후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가중되고 금융기관 부실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체신금융은 민간 금융기관과 경쟁하는 금융기관으로 급성장하여 금융시장 선진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본래임무 공공성에 충실해야▼

체신금융은 민간 금융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는 도서 벽지 주민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부 재정의 자금 조달 수단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과 금융산업의 발전으로 이런 기능의 중요성은 약화되고 국가 금융기관으로서의 비효율성이 부각돼 선진 각국에서는 체신금융이 민영화 등에 의해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 위기 이후 국내 민간 금융기관의 신뢰성이 낮아져 국가가 보증하는 체신예금이 급성장하고 있다. 또 내년부터 예금보험한도가 2000만원으로 제한되면 고액 예금의 이동으로 체신예금은 발전의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시장이 불안한 경우 체신예금의 증대는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1920년대 말 대공황 시기에 은행 등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금융시장이 극도로 혼란해지면서 체신예금이 일시적으로 급증하였다.

그런데 체신예금으로 조달된 자금은 주로 국가 재정에서 사용되므로 금융시장의 자금 공급을 감소시켜 미국의 경우 대공황 이후 경기 침체기에 민간 기업에 의한 경제 회복을 지연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체신예금도 급격한 성장으로 향후 민간 금융을 축소시켜 경제발전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런 현상은 경기 침체기에 더욱 뚜렷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체신예금으로 정부의 금리 부담이 증가하고 체신예금의 수신 규모가 정부 재정에 필요한 수요를 초과하는 경우 자금 운용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국채 발행과 체신예금은 정부가 일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이다. 만약 체신예금 금리가 국채 금리보다 높으면 일본의 경우처럼 정부의 금리 부담이 증가해 정부 재정의 적자 증대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일본처럼 체신예금이 급격히 증가하면 원래 목적에 벗어난 민간 대출 등을 촉진함으로써 체신금융이 민간 금융기관과 직접 경쟁하게 된다. 일본의 경우 체신예금 증대로 민간 금융기관의 발전이 저해되고 정부 지원에 의한 체신금융의 확대로 금융시장의 시장 기능이 저하돼 금융산업과 금융시장의 선진화가 지연되고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체신예금의 향후 발전 방향은 다음과 같은 점을 감안해 분명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첫째, 체신금융의 운영 목적을 명확히 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 금융산업이 아무리 발달해도 도서 벽지 주민에 대한 금융 서비스는 수익성이 낮아 민간 금융기관이 제공할 수 없다. 따라서 금융 소외 지역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체신금융은 어떤 형태로든 유지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 금융이 민간 금융기관과 직접 경쟁하는 것을 방지하고 상호 보완할 수 있도록 제도 운용의 묘가 발휘돼야 할 것이다.

▼특혜줄여 공정경쟁 촉진을▼

둘째, 체신예금에 대한 특혜를 축소함으로써 금융시장에서 공정 경쟁을 촉진하고 시장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 즉, 체신예금 금리가 시장 금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금리 결정 방식을 변경하고 체신예금의 한도를 예금보험 한도 수준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예금보험 한도가 2000만원으로 제한되는 내년 이후에는 거액 예금의 도피처로서 체신예금이 악용될 소지가 있으므로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보완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체신예금의 부실 경영을 방지하기 위해 회계 및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금융감독을 엄격히 시행해야 한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최고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로 막대한 금융 부실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체신예금의 비중이 증가하는 현 시점에서 체신예금으로 인한 금융 부실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 사전에 마련돼야 할 것이다.

강종만(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