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하기 전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관은 서민과 중소기업을 중시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경제학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최저생계보장법 같은 서민 위주의 입법이 이뤄졌다. 그러나 현 정부는 대외개방, 노동시장 유연화, 민영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런 인식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우선 우리가 사용하는 신자유주의의 개념은 그 원조(元祖)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남미 지역에서 시행된 경제정책이라는 선입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대까지 동아시아는 대외지향적인 수출 주도의 공업화를 추구한 데 비해, 남미 국가들은 대내지향적인 수입 대체 중심의 공업화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과가 빛나자 남미도 80년대부터 수출 주도의 공업화로 전환하면서 민영화 등이 도입됐다. 그러나 남미의 자본주의는 동아시아의 자본주의와는 달리, 외국자본에 종속적인 매판자본적 토착자본과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재생산하는 구조였으며 신자유주의도 이런 이해관계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개방은 재벌개혁 압박 수단▼
한국에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남미의 그것과는 달랐다. 우선 현 정부가 친재벌적이라는 비판은 들을 수가 없다. 현재는 친재벌이냐 아니냐를 논할 필요도 없이 재벌밖에 없었던 개발독재시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재벌의 성격도 친족경영이라는 전근대성은 있을지 몰라도 외국자본에 종속적이지는 않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쓰려면 ‘동아시아적’이란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
‘동아시아적’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쓰기로 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외국자본에 우리 안방을 활짝 열어준 것과 관련된다. 그러나 이는 크게 볼 때 위기극복을 위한 필요와 변신을 거부하는 재벌에 대한 압박 차원에서 이해돼야 한다. 실제로 98년 이후 외국자본에 대한 개방과 재벌개혁의 물결 앞에서 친재벌론자들은 일제히 민족주의자로 변신해 외국자본과 개혁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한 바 있다.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재벌의 전근대성과 독점성에 개혁을 압박하기 위해 외국자본을 불러들인 것은, 재벌의 해체나 국유화 같은 비현실적 대안보다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다음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는 대기업 부문에 주로 해당되는 사안임을 직시해야 한다. 중소기업 부문은 원래 유연했으며, 노동에 보호나 권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했고, 대기업 부문의 과도한 노동보호는 이런 중소 내지 주변부 노동자들의 상대적 희생에 기반한 측면이 있다. 대기업 부문의 노동시장 유연화는 필요한 것이었으며, 그 수혜자인 재벌들에게 이제 국내시장에서도 외국자본과 경쟁하게 하려면 최소한 주어져야 할 ‘떡’이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위기극복과 개혁의 경제적 성과를 빨리 보여줘야 한다는 제약 속에서 움직인 것이고, 그 성격은 권위주의 경제와 대비해 신자유주의보다는 성과주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성과주의 시각에서 이해가 안되는 부문이 민영화다. 민영화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명확한 판단도 없이 민영화는 좋은 것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민영화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든다. 그렇다면 이는 정말 섣부른 신자유주의로 비판받아야 한다.
▼민영화 만병통치약 아니다▼
적자를 보고 있는 민간기업이나 공기업을 외국자본에 넘기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흑자를 내는 공기업의 소유권 일부를 외국자본 위주의 방식으로 민영화하는 것은 문제다. 영국 등 외국의 민영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소유권의 민간 이전보다는 경쟁의 도입이 관건이고, 공적독점을 외국이든 국내든 민간독점으로 바꾸는 민영화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외국인 경영자를 초빙하는 것이 쉽고 빠른 공기업 개혁의 방법일 수도 있다.
현정부의 경제노선을 신자유주의, 관치경제, 포퓰리즘(대중주의)의 혼합이라고 볼 때, 세 요소간의 일관성 도출이 과제이며, 더 신경써야 할 부분은 신자유주의 부분보다는 관치경제부분일 것이다.
이 근(서울대 교수·경제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