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표학길/스태그플레이션 대비하자

  • 입력 2001년 7월 16일 18시 32분


경기변동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경제는 보통 호황기에는 물가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는 반면, 불황기에는 물가가 내려가는 디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된다. 가령 최근 5년 동안 지속된 미국 경제의 호황은 주식가격의 초과상승이라는 자산 인플레이션 현상을 가져 왔으며, 반대로 10년 동안 지속된 일본의 불황은 거의 0%에 가까운 물가상승률과 이자율을 동반해 왔다.

그러나 선진국 경제에서도 경기불황 속에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 현상, 즉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할 수 있다. 1974년 제1차 오일파동 직후나 1980년 제2차 오일파동 직후 미국과 일본은 모두 일시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재정경제부나 한국은행의 하반기 경제전망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성장률, 물가상승률, 실업률이 모두 4%대를 기록하는 ‘트리플 4 시대’에 돌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도 경제성장률(8.8%)이나 필자가 추계하는 잠재성장률(6%)에 훨씬 미달하는 성장률 전망치(4.5% 내외)는 사실상 불황국면이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실업률도 3%에서 4%로 증가하고 있고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5월 말에 이미 연초 목표치인 3%를 초과한 것으로 보도됐다. 재경부는 3% 이내로 억제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공공요금과 기름값, 난방비 등이 하반기에 속속 인상될 수밖에 없어 물가상승률 역시 연말까지는 4%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한국경제는 올해 하반기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돌입할 것이다. 물론 미국 경기가 4·4분기에는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미국의 소비자 신뢰지수가 5월과 6월 연속 상승했고, 주택 판매 및 내구재 주문 등이 증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의 수익실적이 계속 부진해 다우지수나 나스닥지수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 4·4분기의 회복 전망도 극히 불투명하다. 미국의 실업률은 비록 완만하기는 하지만,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닷컴 회사들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계속적인 금리인하 조치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감세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기회복이 부진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수익구조가 방만한 신규투자나 계속적인 신규고용을 뒷받침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의 법인기업 이익률 지수와 증권 가격의 복합지수를 비교해 보면 두 지수가 1997년까지는 동반 상승하다가 1997년 이후에는 후자가 전자를 거의 2배의 속도로 추월하게 된다. 즉, 1997년 이후 미국 법인기업들의 이익률지수는 정체 상태에 있었던 데 반해 이들 기업의 주가지수는 2000년 상반기에 이르러 거의 2배 가까이 상승하게 되었다.

정보기술(IT)산업을 중심으로 한 신경제적 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증권시장에서의 거품현상이 결국 자산가격의 하락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최근 1년 동안 주식가격은 상당히 하향조정됐지만, 거품현상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미국경제가 4·4분기에 본격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근거해 거시경제의 운용계획을 성안한다면 이는 극히 위험한 계획이 될 것이다. 당분간 사실상의 스태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는 전망 아래 미국경제의 불황이 지속돼도 대응할 수 있는 경기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령 1999년과 2000년의 경기회복 기간에 설비투자 증가율은 각각 36.3%와 34.4%를 기록한 반면 건설투자 증가율은 각각 -10.3%와 -4.1%를 기록했다. 이는 2년 동안의 경기회복 양상이 극히 불균형적이고 비정상적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최선의 정책은 균형 잡힌 경기활성화 정책과 대폭적인 규제완화 조치를 통해 비용 상승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공공요금 인상 억제 등 물가억제 정책은 더 큰 병을 잉태하는 단기 대책일 뿐이다. 기업은 수익구조 중심의 선진적 구조조정 조치에 돌입해야만 한다. 이렇게 정부와 기업이 수익사업 위주로 사전적 구조조정에 임해야만 스태그플레이션의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경제 회복이라는 막연한 장밋빛 전망에만 매달려 있기에는 경제현실이 너무 절박하다.

표학길(서울대 교수·경제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