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경제위기 이후에도 기업평가나 부실판정에서 간과되는 중요한 변수가 있다. 바로 투자 효율성을 단순하지만 유용하게 측정하는 지표인 투자자본의 회전율(turnover)이다. 회전율은 수익성과 안전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한국의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매출이익률, 즉 마진을 수익성의 척도로 삼았다. 아직도 상장기업의 실적을 보도할 때 ‘1000원어치 팔았어도 이익은 10원에 불과’라는 식의 신문기사 제목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언론보도는 대기업이나 은행도 매출마진을 기업 수익성의 척도로 중시해왔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매출마진은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지만 수익성 자체는 아니다. 진정한 수익성은 언제나 투자한 자본에 대한 이익률이다. 매출마진 이외에 투자이익률을 결정하는 변수가 바로 ‘투자금액의 몇 배에 상당하는 매출을 일으키는가’를 측정하는 회전율이다(투자이익률〓마진×회전율). 일례로 박리다매(薄利多賣)의 소매업은 마진은 낮지만 회전율이 높기 때문에 투자자본에 대한 적정한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철강업 같은 장치산업은 회전율은 낮지만 마진이 높기 때문에 투자자본에 대한 적정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한편, 안전성의 척도는 과거에는 부채비율이었다. 그러나 부채비율이 200% 이하로 낮아졌어도 다수 기업의 부실은 여전하므로, 이제는 늦은 감은 있지만 금융비용에 대비(對比)한 영업이익의 크기를 측정하는 이른바 이자보상비율을 중시하고 있다. 금융기관이 퇴출기업을 선정할 때도 이자보상비율이 100% 이하인 기업을 우선적인 대상으로 한다. 경제위기 이전에는 기업과 은행 모두 이 지표를 활용하지 않았다. 한국은행에서 매년 발간하는 ‘기업경영분석’에는 100여개의 경영분석 지표가 등장하지만, 경제위기 이전에는 이자보상비율이 한 번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지표가 얼마나 경시되었는지를 입증한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잠재 부실기업이 전체기업의 30∼40%에 달한다. 부채비율이 낮아지고 금리수준도 크게 하락하여 금융비용의 절대 규모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 기업의 이자보상비율이 아직도 낮은 이유는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매출마진이 낮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인식되고 있으므로 여기서도 핵심은 투자자본의 낮은 회전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전율의 중요성은 간과되고 있다. 길거리에 좌판을 깔아 놓고 물건을 파는 영세상인이나 동네 구멍가게 주인은 비록 수백만원 정도의 적은 자본을 투자하지만 마진뿐만 아니라 회전율도 중시한다. 마진이 적정하더라도 회전율이 낮으면 투자한 자본에 대한 적정이윤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업의 수익성이나 안전성에 대하여 기업과 은행의 경영자가 갖고 있는 통찰력이 구멍가게를 경영하는 영세상인의 수준보다도 낮다고 할 수밖에 없다.
왜 한국에서는 회전율이 경시되는가? 관성의 탓이다. 투자를 지나치게 많이 하여 설비 가동률이 낮더라도 과다한 투자자금에 대한 고정 금융비용은 부담해야 한다. 과거에는 과다한 금융비용을 독과점 구조에 연유한 높은 영업마진과 부동산 특별이익으로 충당하였다. 경제위기를 경험하고서야 기업과 은행 모두 과거의 수익성 구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마불사(大馬不死) 시대에 생긴 관성의 탓인지, 낮은 회전율도 문제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간과되고 있다.
이제 기업의 수익성과 안전성이 모두 낮은 이유가 매출마진도 적정수준 이하지만 투자자본의 회전율 또한 저조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과다차입의 병폐는 부채비율의 축소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과잉투자의 병폐는 회전율의 향상으로 치유해야 한다. 이제 투자자본 회전율의 향상은 기업의 수익성과 안전성을 높이는 최대의 관건으로 등장하였다.
박상용(연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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