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전략이 성공한 예는 핀란드의 노키아와 스웨덴의 에릭슨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35%인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는 핀란드 주식시가총액의 60%, 제조업 고용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핀란드 정부도 정보통신산업에 연구 개발 예산의 절반을 투자하는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강소국(强小國)이 되었다. 스웨덴의 대표기업 에릭슨도 똑같이 스웨덴을 세계 1위의 정보기술국가로 만들었다. 그 외에도 싱가포르, 대만 등이 강소국의 예로 꼽힌다.
과연 강소국 모델이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문어발식 선단식 경영의 국내기업에 선택과 집중의 전략은 사회적으로 많은 공감을 얻는다. 핵심역량을 키워 세계적 기업이 되자는 데 반론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점이 간과되고 있다.
첫째, 강소국으로 평가받는 나라는 그야말로 소국(小國)이다. 인구 규모로 볼 때 핀란드는 517만명, 스웨덴은 890만명, 싱가포르는 370만명, 덴마크는 530만명, 스위스도 1000만명에 불과하다. 서울 인구보다도 적다. 인구 4600만명의 한국은 프랑스(5900만명) 독일(8200만명) 영국(5900만명) 이탈리아(5600만명) 등과 비교할 때 소국이 아니라 대국이다. 지금보다 적은 품목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는 강소국이 되어서는 4600만명이 먹고 살기에 부족하다.
둘째, 이미 한국경제는 너무 집중돼 있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철강 정보통신기기의 수출이 경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산업이 국민을 먹여 살렸으나 점차 중국에 추월당하면서 5개 산업이 경제를 지탱하고 있으니 선택은 아니어도 분명 집중은 돼 있다.
간단한 지표를 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5400여 품목의 수출액을 기준으로 국가별 수출 집중도를 계산해 보면 한국은 농수산물 수출 의존도가 높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다음으로 높다. 공업국으로는 실질적으로 한국이 일부 품목의 수출에 의존하는 정도가 가장 높다. 그 정도 역시 심해지고 있다.
강소국으로 평가받는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도 알려진 바와 달리 여러 품목을 골고루 수출한다. 수출실적 상위 5대 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한국은 25.4%나 되지만 핀란드 22.2%, 스웨덴 22.5%, 덴마크 10%, 네덜란드 16.4%이다. 강소국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품목의 수출을 통해 안정적인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 집중도를 보면 인구 규모가 큰 나라일수록 여러 품목을 다양하게 수출한다. 여러 상품에 수출 경쟁력이 있어야 많은 인구가 먹고 살 수 있다는 단적인 예다. 따라서 기술투자 역량과 자원이 부족하다고 해서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강소국 모델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특히 몇 개의 전략 산업에 국가와 기업이 한정된 자원을 전부 투입할 경우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만약 한국의 인구 규모로 강소국이 되려면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등과 같이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은 품목을 지금의 2배 정도로 늘려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국내 경제는 2∼3% 성장에 만족해야 한다. 경쟁력을 점차 상실하면서 겨우 5개 산업의 수출에 의존하는 취약한 경제구조가 되었는데 이것마저 위태로워지자 강소국 운운하는 것은 패자의 소극적 발상이다.
구태여 선택과 집중을 하려면 기업은 각각 다양한 분야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라 전체로는 여러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공공부문은 개별 산업과 기업에 대한 지원보다는 파급효과가 큰 공공재적 성격의 연구개발 투자나 기업환경 개선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몇 개의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카지노에서 대박이 터지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잘못되면 나라가 망한다. 한 번 망한 기업은 되살릴 수 있으나 한 번 망한 나라는 결코 되살리기 힘들다.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때다.
박승록(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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