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채권자 '무임승차' 막아야▼
한국의 경우 효과적인 도산제도의 필요성이 비교적 낮았던 고도 성장기가 끝나면서 경제위기가 순식간에 닥쳤다. 수많은 부실기업을 신속히 처리해야 했지만 불행하게도 파산, 청산, 화의, 법정관리 등 일련의 도산 관련 법제도는 너무나 미비했다. 도산 관련법의 테두리 밖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하는 사적(私的)인 기업 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그 결과 이미 14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IMF 졸업’을 운운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기업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7월에 국회를 통과해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촉진법)이다. 회사정리법(이하 정리법)에 의한 부실기업 처리는 통상 이미 부도난 기업을 법원의 판단 하에 법정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촉진법에서는 부실 징후가 있는 대기업을 채권단의 판단 하에 공동관리하는 것이다. 부실 징후가 있지만 정상화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해 채권금융기관들이 만기 연장, 원리금 축소, 출자 전환, 신규자금 공여 등의 지원을 하는 조건으로 기업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이른바 공동관리 절차를 법제화한 것이 이 법의 골격이다.
이 법 시행의 성패는 한국경제의 최대 현안인 기업 구조조정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논란 끝에 4년 간의 한시적인 법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법의 시행에는 여러 가지 난관이 예상된다. 촉진법 시행 과정에서 예상되는 핵심적인 문제 역시 부실기업을 처리하는 모든 도산제도가 직면하는 무임승차의 문제이다.
일부 채권자가 시도하는 무임승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다수 채권자의 경쟁적인 채권행사로 인한 기업가치의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서 취하는 채권동결에 불참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부분적인 희생이 불가피한 공동관리에 불참함으로써 상대적인 이득을 보려는 것이다. 법원의 판단 하에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정리법에서는 법원이 모든 채권을 동결하고, 다수 채권자가 동의한 정리계획에 반대한 소수 채권자도 다수 의견에 따라야 하는 다수결 원리를 채택함으로써 무임승차를 원천봉쇄한다.
그러나 채권금융기관의 판단 하에 부실 징후 기업을 정상화하는 촉진법에서는 채권단의 75% 찬성으로 채권행사 유예를 결정한다. 다만, 주채권은행이 채권금융기관에 회의 소집을 통보한 날로부터 1차 회의가 소집되는 날까지 약 일주일 동안은 궁여지책으로 금융감독원장이 채권행사 유예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채권행사 유예를 포함한 공동관리를 반대한 25% 이하 소수 채권자의 채권은 공동관리를 찬성한 다수 채권자가 매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매입 가격 및 조건에 합의가 안 되는 경우에는 전문가 7인으로 구성된 이른 바 조정위원회가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공동이익 위한 신뢰감 중요▼
정리법에 의한 법정관리에 비해서 촉진법에 의한 채권단 자율의 공동관리는 유연하고 신속하며 부실처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채권금융기관의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하기는 더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무임승차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부의 무임승차가 채권단 전체의 공동이익을 저해함으로써 무임승차를 시도하는 채권자에게도 결국은 손실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무임승차를 스스로 자제하도록 하는 여건의 조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 여건의 핵심은 바로 신뢰감이다.
공동관리를 주도하는 주채권은행, 채권금융기관간의 이견을 조정하는 조정위원회, 본연의 업무가 아니지만 시대적 상황논리에 따라 불가피하게 기업구조조정 과정에 참여하는 금융감독원, 국유화된 다수 은행의 대주주인 정부, 그리고 대상기업의 이해 관계자 등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 참여하는 핵심적인 관계자들의 신뢰성 있는 판단과 행동은 촉진법을 통한 기업구조조정 성공의 관건이다.
박상용(연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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