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광두/출자총액 제한 과감히 풀자

  • 입력 2001년 9월 24일 18시 45분


가을 하늘은 높고 맑지만 우리의 마음은 어둡고 답답하기만 하다. 정치, 사회의 현상이 혼란스럽고 경제의 앞날 또한 짙은 안개 속에 가려 있기 때문이다.

▼추경 편성-금리 인하 효과 의문▼

한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은 연초 4% 수준으로 전망되었으나 미국의 테러사태 이후에는 2% 수준까지 낮아졌다. 금년 4·4분기부터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했던 정책 당국자들의 낙관론이 자취를 감춘지도 오래됐다.

국내 경제의 수출시장인 세계 경제 또한 우울한 모습이다. 테러 사태로 미국의 경기는 당초 예상보다 더 악화되고 회복 시기 또한 더욱 늦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일본의 장기 불황, 유럽의 부진과 함께 세계 경제의 동시 침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세계 경제의 침체에 따라 수출은 금년 3월부터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7, 8월 들어 감소율은 20%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의 확대 편성, 금리 인하, 출자총액 제한 완화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추경 편성이나 금리 인하와 같은 정책 수단들이 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내수 증대와 기업 재무구조의 개선, 그리고 증권시장 부양 등이다.

추경 편성은 그 자체가 내수 증대로 연결될 수 있으나 국가 재정에 주는 부담과 집행 과정에서의 비효율성 때문에 그 효과를 크게 기대하긴 어렵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에 경기 회복을 위해서 10여차례에 걸쳐 102조엔 규모의 재정지출을 확대했지만 그 실효가 미약했고 재정 사정만 극도로 악화시켰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금리 인하의 효과도 미지수이다. 금리 인하를 통해서 얻으려는 정책 의지는 투자와 소비 지출의 증대를 촉진하고 증시의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부실 기업의 퇴출이 지연되고 금융시스템의 정상화가 미진한 상태에서, 그리고 세계 경제의 전망이 어두워지고 국내의 정치 불안이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이런 효과가 나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정치와 정부에 대한 불신과 미래에 대한 불안의 중첩은 유동성 함정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일본이 추진했던 초저금리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했던 이유는 일본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졌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정치권의 이익집단간 갈등 조정능력 결핍으로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그 결과 금융권 부실이 50조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증폭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확대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유동성 함정을 초래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경기 대응책의 중심을 금리와 추경예산보다는 출자총액 제한 완화와 같은 기업 활동의 여건 개선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기업들에 채워진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기업의 활력을 되찾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은 1980년대 구조조정과 경기회복을 동시에 추진했고 그것이 성공적인 열매를 맺어 1990년대 장기 호황을 누렸다. 이 때 미국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의 3대 축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산업규제의 개혁과 기업 인프라의 구축, 안정적 재정 금융의 운용이었다.

국제경쟁을 의식한 정치 지도자들의 확고한 의지와 노조 동의로 노조의 투쟁 내용이 교육 훈련을 통한 재취업 기회의 확대로 전환됨에 따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확보되었다. 동시에 전 산업에 대한 행정규제를 대폭 폐지하고 반독점법도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축적으로 운용했다. 동시에 기술 경영 금융 등 여러 면에서 신상품, 신서비스, 신공정 등의 시장화를 지원하는 등 기업 인프라를 광범위하게 구축했다.

▼경기대책 구조조정 필요▼

또한 균형예산법 제정 등을 통해 재정 지출을 강력하게 억제해 장기 시장금리 인하를 유도함과 동시에 인플레이션의 위협이 없는 환경 유지가 구조조정 성공을 위해 중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였다.

1980년대 미국의 성공과 1990년대 일본의 실패를 바탕으로 판단할 때 정부의 경기 대응책의 현 구조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금리 인하, 추경편성보다는 기업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동시에 구조조정도 이뤄지게 할 수 있는 정책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경제를 길게 보는 시각에서 경기 대책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김광두(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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