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원암/부실기업 과감히 도려내라

  • 입력 2001년 10월 15일 18시 37분


우리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연초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5%로 예상하더니 이제는 2%대로 낮추었다. 수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8월에는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됐다. 세계 경기의 후퇴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경기가 침체되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외환불안이 재연되고 있다. 물론 최근 경제불안의 주요 원인은 미국 테러사건과 경기회복 지연에 있다고 하겠으나 해외요인만을 탓하기에는 우리 경제 상황이 너무나 심상치 않다.

▼일본식 장기불황 올 수도▼

반도체 가격의 급락과 함께 수출이 급감하고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경제의 활로를 잃어버렸다. 게다가 또 다시 주가조작과 정관계 로비의혹 사건이 발생하면서 주식시장이 위축됐다. 정부는 올해 2월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짓고 이후에는 상시적 구조조정을 한다더니 아직까지도 부실처리 지연에 따른 장기불황의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7년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연초부터 여야간 정치적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경제적으로는 반도체 가격 급락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대폭 늘어나고 한보의 정관계 로비 사건이 발생했다. 대농 진로 등 대기업 부도사태가 발생하였으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도를 유예시켰다. 한편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보고 경각심을 갖는 대신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는 오만에 빠졌었다.

아무튼 외환위기를 막지 못한 문민정부는 ‘3류’ 정부로 낙인찍혔다. 그로부터 4년 후, 오늘의 경제난국을 타개함에 있어서 국민의 정부는 과거 ‘3류’ 정부와 얼마나 다른가. 외환위기 때 과장이었던 공무원들은 이제 정책 결정의 핵심인 국장이 되었다. 그들은 외환위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으며 그들의 선임 국장과 얼마나 다르게 행동하고 있는가. 필자는 하이닉스반도체 처리 과정을 보면서 1997년의 기아자동차를, ‘이용호 게이트’를 보면서 1997년의 금융감독 부실을 떠올린다. 또 정책 담당자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대만 등 대부분의 아시아 경제가 어렵다고 위안을 받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1997년에 태국의 위기를 안이하게 판단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현재 우리 경제는 침체의 와중에서 내년 2·4분기 이후 미국경제의 회복에 희망을 걸고 있다. 이렇게 대내외 여건이 불확실할 때에는 경제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하지만 여야간, 정부부처간 의견 대립으로 신뢰할 만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선 정부의 상시적 구조조정 정책보다 신속하고 과감한 구조조정 정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약 40%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고 있으므로 부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금리를 아무리 낮춰도 자금이 돌지 않는 일본식 장기불황을 겪게 된다. 따라서 경제여건이 좋아질 때까지 미루지 말고 여건이 어렵더라도 과감하게 부실을 정리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경제여건이 개선될 때 추진하는 것이 좋으나 실제로는 경제여건이 악화될 때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

둘째, 구조조정에 필수적인 경기부양 정책이 폄훼되고 있다.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수행하려면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데,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부양정책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형성됐다. 또 경기부양으로 경기침체를 막을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으나 부양책을 사용하지 않으면 경기가 더 크게 침체될 것임을 고려해야 한다.

▼재정확대-금리 인하 절실▼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이 요망된다. 여야가 추가경정 예산 편성과 감세 문제로 많은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으므로 재정확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의견절충이 절실하다. 아울러 금리정책도 경기후퇴에 후행하지 않고 선행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금리인하는 설비투자보다 건설투자에 미치는 효과가 크므로 금리인하로 부동산시장이 과열되지 않도록 유의하며 투자 활성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마련한 출자총액 제한 등 대기업 정책은 아직도 직접적 규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직접적 규제를 지양하고 기업지배구조, 회계기준, 공시제도 등을 강화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박원암(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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