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원암/경기회복 고삐를 죄라

  • 입력 2001년 11월 19일 18시 28분


많은 경제연구 기관들은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2%대에 머물고 내년에는 하반기 이후 경제가 회복되면서 3%대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심상찮은 2%대 저성장▼

이러한 전망이 맞다면 외환위기 이후 5년 동안 우리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4%를 다소 밑돌게 된다.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국민의 정부가 기울인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이전 7%를 웃돌던 장기 성장률이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위기 이전 2%에 이르던 실업률이 4% 가깝게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일용직 임시직이 크게 늘면서 고용의 질도 악화되었다.

문제는 저성장에 대한 걱정이 점차 줄어들고 나름대로 성과에 만족하면서 지내려는 축소균형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올해 2%대 성장은 당초 정부가 제시한 4∼5% 성장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것이다. 그러나 성장률의 저하가 최근 미국 경제의 침체와 테러 사태에 연유하는 바가 크므로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듯하다. 싱가포르와 대만은 우리보다 더 어렵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상대적으로 경제사정이 좋은 우리나라의 주가가 상승하자 낮은 성장에도 자족하면서 내년 하반기 이후 미국 경제의 회복을 지나치게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향후 미국 경기의 회복이 지연되거나 일본의 불황이 심해지면 저성장의 문제가 심화되면서 우리나라 경기 둔화의 골도 깊어지게 될 것이다. 현재 주가가 상승하고 성장둔화 폭도 당초 예상보다 작아지고 있다고 하나 터널 끝에 보이는 빛이 끝을 알리는 햇빛인지 마주 오는 열차의 불빛인지 현재로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과 일본의 내년도 경제전망을 각각 2.2%에서 0.7%로, 0.2%에서 -1.3%로 하향조정하면서 세계 중앙은행들에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촉구했다. 또한 미국 의회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경기부양에 대한 논쟁을 마무리짓고 신속히 추가 경기부양책에 합의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나라도 경기부양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느라 경기조절의 시점을 놓치고 있다. 국회와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안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사이 한국은행은 재정확대에 따른 경기회복과 금리상승 압력을 기대하면서 추가 금리인하를 보류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재정확대와 금리인하로 경기가 호전될 것이라고 말할 뿐 내년도 성장률을 어느 선에서 유지할 지에 대해서는 어떤 암시도 주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참고 견디면 곧 경기가 회복된다는 말인가. 미국 경기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다가 경기가 악화되었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회복되는가. 저성장은 기업부실을 심화시키고 세수를 줄여서 재정 사정을 악화시키는 등 폐해가 확대될 수 있으므로 지금부터 경제활력 회복의 여건을 마련해 폐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구조조정을 등한시한 채 경기부양에만 매달린다면 경기가 회복되기는커녕 일본식 장기불황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 또한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공적연금의 준비금 부족으로 재정사정이 악화되어 있으므로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경기부양책은 부양 일변도로 집행돼서는 안될 것이며 우리가 처한 여건을 충분히 감안해 정책의 묘를 살려야 할 것이다.

▼경기부양 시점 놓친다면…▼

단기적 경기부양과 함께 장기적 성장활력의 회복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내년은 대선이 있는 해이므로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온 구조조정과 개혁의 노력이 느슨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해외투자자들은 최근 대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등 대기업 규제완화를 개혁 후퇴의 징후로 받아들이고 경영의 투명성과 지배구조 개선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이른바 ‘3대 게이트’ 사건으로 정경유착이 도마에 올라 있다. 또한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출범은 농산물과 서비스에 대한 우리나라 개방정책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내년까지 정부 정책은 도처에서 일관성과 신뢰성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1997년과 같이 대선을 앞두고 정부정책이 표류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개혁과 개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한편 경기부양책의 조기 실시로 경기회복의 고삐를 당겨야 할 시점이다.

박원암(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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