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통해 경쟁력 제고▼
제일과 하나은행이 합병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며 서울 신한 조흥 외환은행 등도 적당한 합병파트너를 물색중이라고 한다. 은행권의 이러한 합병 열기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이 가져온 긍정적이며 고무적인 결과로서 시장에 의한 금융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은행간 합병은 개별 은행 차원에서 볼 때 중복 부문의 통합에 따르는 비용절감, 사업 부문간의 시너지 창출 등을 통하여 은행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산업조직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은행간 합병은 은행산업의 고질적 문제였던 과잉설비(excess capacity) 문제를 완화시켜 주는 효과를 유발함으로써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시킨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인구당 은행 수가 너무 많았고 이는 은행간의 과당 경쟁을 유발하여 은행의 수익성에 악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은행산업의 성공적 구조조정이 우리나라 금융구조조정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볼 때 최근 추진되고 있는 합병을 통한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은 꼭 성공해야 하며 정부, 은행 경영진, 노조는 이의 성공을 위한 자신들의 과제가 무엇인지 냉철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부는 건전한 금융시스템 확보를 위한 감독자로서 금융구조조정을 신속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우량은행간의 합병은 시장에 맡겨두더라도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은행들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금융지주회사제도의 도입만으로는 현재의 금융부실을 해결하고 이들 은행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합병과 공적자금의 추가 투입을 통해 부실은행들을 통합, 정리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만약 이들 은행에 대한 근본적 구조조정이 늦추어진다면 성공적 금융구조조정은 요원해질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정부가 대주주이거나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에 대한 ‘관치금융’을 방지하고 은행의 자율경영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지시에 의해 부실기업을 지원하는 식의 구태는 더 이상 시장에서 용납되지 않으며 이는 또한 지금까지 애써 쌓아온 경제개혁에 대한 신뢰를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 은행의 인사에 대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이와 더불어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투입된 150조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의 주인인 국민을 대신하여 은행경영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평가를 통해 ‘책임경영’이 정착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경영 실패를 책임지고 최근 물러난 윌프레드 호리에 전 제일은행장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은행경영진은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구조조정을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부실화된 은행의 경영진은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철저하게 축소지향적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노조 또한 대승적 견지에서 구조조정에 협력해야 할 것이다. 고용안정이 보장되던 곳에서 고용이 불안한 곳으로 변한 직장에서 일하게 된 은행원들의 개인적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난 국민세금이 투입된 후에도 늘어만 가는 부실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은행노조와 경영진은 인정하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책임경영 정착돼야▼
더욱이 노조와 경영진은 인터넷 뱅킹과 거대 글로벌뱅크의 본격적 등장이라는 금융시장의 근본적이고 급격한 변화 속에서 고용보장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은행원들의 ‘고용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직업훈련의 강화에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은행원들의 고용안정을 도와주는 길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금 추진중인 금융구조조정이 제대로 마무리되어 우리 은행들이 초우량금융기관으로서 세계무대에 우뚝 서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조명현(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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