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정문건/세계 경제대통령‘펜타곤’

  • 입력 2001년 12월 3일 18시 32분


세계경제 흐름에 큰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경기변동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거시변수에 세대교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세기말 정보기술(IT) 산업의 발흥으로 신경제론자들이 득세했던 미국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 시절에만 해도 금리와 환율 등 금융변수들이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 출범 이후 이 변수들이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美 FRB-재무부보다 막강▼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올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열 차례에 걸친 공격적인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미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로 인해 1990년대 미 경제의 안정성장을 유도한 공로로 지난 십수년간 장기 집권하고 있는 그린스펀 ‘세계경제 대통령’의 신통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 경제를 붕괴의 위기로 몰았던 지난 세기 미 정부의 의도적인 달러화 강세정책은 세기 초 미국의 새 정부에 의해서도 승계되고 있다고는 하나 예전과 같이 세계경제 흐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 과거 고정환율 제도로 회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이후 한때 배럴당 35달러선으로 급등한 국제유가는 그동안 과다하게 부풀었던 미국 정보기술 산업의 거품을 터뜨려 주요 선진국 경제의 동반침체를 촉발했다. 다시 말해 지난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을 통한 고유가 정책은 경기과열로 인한 수요압력을 우려하고 있던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로 하여금 물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 긴축정책을 강화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금리는 상승하고 정보기술 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하면서 세기말 과잉투자 붐으로 잠재되어 있던 정보기술 산업의 과잉설비 문제가 현재화되었다.

돌이켜보면 1997년 이후 산유국들은 미증유의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전 세계 산업의 중심이 정보기술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는데도 지식기반이 전무한 산유국들은 오직 원유 수출에만 의존하고 있어 이러한 추세에서 철저히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데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급랭하고 있는 가운데 산유국의 증산으로 국제유가는 1998년 이후 상당기간 배럴당 10달러 수준으로 폭락했다. 이는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난 1980년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배럴당 5달러 이하로 사막이 대부분인 중동 산유국의 물값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에 지난해 이후 이들은 자구적 차원에서 감산 합의를 전례 없이 준수해 신경제의 성공에 힘입은 미국의 일방적인 세계화 추진에 경제적 반격을 가했던 것이다. 이제 미 공화당 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의 정보기술 산업의 과잉설비 해소 여부와 유가의 향방 등 실물경제 변수들이 세계경제의 흐름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국제유가는 아프간 전쟁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걸프전 때와는 달리 폭락하고 있다. 세계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로 세계 에너지 수요의 8%를 차지하고 있던 항공유 수요가 30% 이상 급감함에 따라 국제 원유시장의 공급 과잉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전문기관의 추정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하루 300만 배럴 정도의 감산이 이루어져야 국제유가가 OPEC의 목표 수준인 배럴당 22∼28달러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테러전략따라 경제 출렁▼

그러나 현재 러시아를 비롯한 비(非) OPEC 산유국들이 감산을 위한 고통분담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향후 상당기간 저유가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 미 정보기술 부문의 과잉설비는 시장을 통한 상시 구조조정으로 상당히 해소되기는 했으나 올 말 현재 4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예측기관들은 미 정부의 공격적인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향후 미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적어도 6개월 내외의 조정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내년 중 세계경제는 명암이 교차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경제의 흐름은 미 연준과 재무부의 정책보다는 미 국방부의 대테러전 전략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추가 테러 여부에 따라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정문건(삼성경제연구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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